B6판. 152면. 작자의 첫 시집으로 배정국(裵正國)이 장정하고 최재덕(崔載德)이 삽화를 그려서, 1947년 백양당(白楊堂)에서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세상을 떠난 사백(舍伯)의 머리맡에」라는 헌사(獻詞)가 있고, 이어 1부에 「태양(太陽) 없는 땅」·「우화(寓話)」·「권력(權力)은 아모에게도 아니」·「종(鐘)」 등 10편, 2부에 「단장(斷章)」·「경(卿)아」·「사(死)」 등 5편, 3부에 「또하나의 다른 태양(太陽)」·「달」·「해바라기」 등 13편으로 모두 28편의 시가 있다. 책 끝에는 지은이의 소설 「청춘(靑春)」의 일절(一節)인 「빛을 잃고 그 드높은 언덕을」을 후기로 수록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광복 이전에 쓴 「묘지」·「시」·「샘물」·「가을」과 같은 습작기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광복 직후부터 1946년까지 사이에 창작되어 시인의 현실인식을 직접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습작기의 작품은 모두 1931년∼1935년에 발표된 비교적 짧은 서정시로, 시적 화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은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외국문학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설정식은 이런 시에서 과거의 모든 어둠과 치욕과 고난을 극복하는 상징으로서의 ‘해바라기’나 ‘태양’(「해바라기」)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일제 잔재의 청산과 민주주의 민족국가 수립이라는 역사적 명제의 실현 가능성을 관념적 열정으로 확인하고 있다.
또 「종」에 이르러서는 이런 단순성을 극복하고 상징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비판적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즉 ‘종소리’를 권력에 억눌린 신음이자 자유를 갈망하는 스스로의 외침이라는 민족 염원의 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내 간 뒤에도 민족(民族)은 있으리니/스스로 울리는 자유(自由)를 기다리라/그러나 내 간 뒤에도 신음(呻吟)은 들리리니”(「종」)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유 획득을 위한 투쟁에서 민족의 인내를 감춘 것이자 그 극복의 의지로 ‘종소리’를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