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네 (▽)

처네
처네
의생활
물품
부녀자의 내외용 쓰개, 포대기, 간편한 이불의 용도로 사용된 치마형 싸개.
이칭
이칭
천의(薦衣), 쳔의, 천의(衤薦衣)
물품
재질
명주
용도
쓰개
소장처
온양민속박물관
제작 시기
19세기
내용 요약

처네는 명칭과 기본 모양은 같으면서 부녀자의 내외용 쓰개, 포대기, 간편한 이불의 용도로 쓰인 치마형 싸개이다. 치마와 모양이 비슷하면서 윗부분에 깃과 동정이 달려 있으며, 중심부에는 주름이 잡혀 있는 형태이며, 내외용 쓰개와 포대기에는 고름이 달려 있다. 한자어는 ‘薦衣, 衤薦衣’, 한글은 ‘쳔의’로 표기되며, 처네는 근대 이후 불리운 속음이다.

정의
부녀자의 내외용 쓰개, 포대기, 간편한 이불의 용도로 사용된 치마형 싸개.
연원

처네는 명칭과 기본 형태는 동일하지만 용도를 달리하여 간편한 이불, 아기 포대기, 부녀자의 머리쓰개의 3가지 용도로 사용된 치마형 싸개를 말한다. 한자어는 ‘薦衣, 衤薦衣’, 한글로는 ‘쳔의’로 표기되며, ‘처네’는 근대 이후 불리던 주1이다. 기본 형태는 치마와 모양이 비슷하면서 윗부분에 저고리 모양과 같은 깃과 흰색 동정이 달려 있고, 중심부에는 주름이 몇 가닥씩 잡혀 있는 형태이다.

간편한 이불용 처네는 이불보다 작아서 앉아서 덮을 수도 있는 등 일상에서 소일할 때 몸을 감싼 방한용이다. 부녀자의 쓰개는 깃의 양쪽에 고름을 달아 착장했을 때 머리부터 상체를 감싸게 하였다. 아기를 업을 때 사용한 처네는 포대기라고도 불렀으며, 좌우에 긴 끈이 달려 있어 아기를 업을 때 감싸 둘렀다. 처네 중에서 이불용 처네는 지금의 차렵이불과 무릎 담요로 진화하였으며, 포대기는 20세기 말까지 아기를 업을 때 애용하여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형태와 제작방식

기본 형태는 치마와 모양이 비슷하면서 윗부분에 저고리 모양과 같은 깃과 흰색 동정이 달려 있으며, 중심부에는 주름이 몇 가닥씩 잡혀 있다. 여기에 고름의 부착 유무로 용도가 구별된다.

머리쓰개 용도의 처네는 「왕실발기」에 ‘자적 수화주 누비 머리천의’가 기록되어 있다. 수식어 ‘머리’가 있는 것을 볼 때 일반 천의와는 별개의 머리쓰개 용도임을 알 수 있다. 조선 말기에 여인들이 쓰개용 처네를 착장한 모습의 사진에서 처네에 달린 백색 동정과 정수리 부분에 잡힌 주름, 상부에 달린 좌우의 끈을 뒤로 넘겨 동여맨 모습이 확인된다.

간편한 이불 용도의 처네는 천의라는 명칭으로 확인된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820년경) 섬용지(贍用志) 편에서는 방한용으로 간편하게 사용하는 이불 용도인 천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세속에서 ‘薦衣’라고 불리우는 주3에 대해 주2에 솜을 넣어 누빈 것으로 몸체는 이불보다 작고 위는 둥글고 아래는 직선으로 되어, 앉아서 덮으면 허리와 무릎을 덮을 수 있다.’라고 하여 차렵이불처럼 용도의 간편함을 설명하고 있다.

포대기 용도의 처네는 『조선재봉전서(朝鮮裁縫全書)』에 천의의 세부 구조와 부분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모양이 아기를 등에 업을 때 사용하는 포대기와 동일하다.

변천 및 현황

부녀자의 머리쓰개용 처내는 상류층에서는 ‘머리 천의’라는 별도의 명칭으로도 불리었으나 민속 조사에서는 조선 말기 이후 부녀자가 방한용 쓰개로 처네를 사용한 것이 확인된다. 유물은 대부분 조선 말기 이후의 것으로, 오륜대순교자기념박물관 소장의 왕실용 천의와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의 근대 처네가 대표적인 유물이다. 기본 형태에 깃 끝에 짧은 고름이 달려 있고, 앞 여밈 부분에 작은 고름이나 단추가 추가되기도 한다. 상부에 달린 좌우의 끈을 뒤로 넘겨 동여맸다.

침구류에 속하지만 이불보다 작아서 다른 용도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간편 이불용 처네는 전해지는 유물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인 신광헌(申光憲, 1731~1784)의 묘에서 출토된 누비 천의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의 경주이씨(1700년대 중후반 추정) 묘 출토 누비 천의가 있다. 형태는 길 좌우에 무를 달아 누비 치마를 만들고 상부에 깃과 동정을 부착하고 깃 중심 좌우에 주름을 잡아주었다. 같은 용도의 근세 유물로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왕자 천의가 대표적으로, 겉감은 홍색, 안감은 연두색으로 하고 사이에 솜을 두어 누빈 것이다. 길 좌우에는 무가 달리고 상부에 허리말기와 같은 깃을 달았으며, 깃에는 흰색 동정이 달려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의 근세 포대기 유물은 여인의 누비 바지를 재구성하여 만든 것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나이 많은 노인의 옷으로 포대기를 만들었다는 속설을 방증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원전

『林園經濟志』

단행본

김숙당, 『조선재봉전서』(활문사, 1925)
이능화, 『조선여속고』(한남서림, 1927)
강순제 외,『한국복식사전』(민속원, 2015)

논문

이명은, 『궁중발기에 나타난 행사 및 복식 연구』(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이명은, 「천의 용도의 다양성에 관한 연구」(『韓國服飾』 3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16)
주석
주1

한자의 음을 읽을 때, 본음과는 달리 일부 단어에서 굳어져 쓰이는 음. 예를 들어 ‘六月’을 ‘육월’로 읽지 않고 ‘유월’로 읽는 따위이다. 우리말샘

주2

물을 들인 명주. 우리말샘

주3

이불 밑에 덧덮는 얇고 작은 이불. 겹으로 된 것도 있고 솜을 얇게 둔 것도 있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명은(우리옷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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