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이씨(李氏). 속명(俗名)은 순호(淳浩). 경상남도 진주 출신. 진주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주고등농림학교에 진학하였다. 여름방학 때, 진주 비봉산 호국사(護國寺)에 갔다가 승려 박포명(朴抱明)을 만나 불교와 인연을 맺고 해인사 · 백양사(白羊寺) 등을 돌아다니며 출가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졸업 후 2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불법을 배우고 이듬해 귀국하여 고성 옥천사(玉泉寺)에서 박한영(朴漢永)을 은사로 득도(得度) · 수계(受戒)하고 청담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29세에 서울 개운사(開運寺)의 대원불교전문강원(大圓佛敎傳門講院)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이수한 뒤, 부패해 가는 승단(僧團)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불교를 개혁, 정화하려는 뜻을 세워 50여 명의 승려들을 규합, 개운사에서 전국학인대회(全國學人大會)를 결성하였으나 일본의 관권(官權)에 의하여 무산되었다.
33세에 충청남도 정혜사(定慧寺) 선원(禪院)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 이후 20여 년 동안 전주 선원에서 참선 수도하였다. 광복 후에는 교단 재건과 불법 중흥을 위하여 고성 문수암(文殊庵), 해인사 등지에서 대중을 교화하고 도제(徒弟)를 양성하였다. 또한 합리적인 종단의 제도를 역설하여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고, 그들이 해야 할 5개 조의 행동지침을 발표하였다.
1954년 서울 선학원(禪學院)에서 전국비구승대회를 소집하여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그 해 가을 사찰이 청정도량으로 정화될 때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는 결의로 약 400명의 비구와 함께 단식하였다.
이듬해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에 취임, 이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해인사 주지, 도선사(道詵寺) 주지, 동국학원 이사장을 거쳐 1966년 대한불교조계종 통합종단 제2대종정, 전국신도회 총재, 조계종 장로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8년 도선사에 호국참회원(護國懺悔院)을 건립하였고 1969년에는 불교계의 앞날을 염려하여 종단의 탈퇴를 선언하였다. 1970년 총무원장에 재임하였고 세계불교연합장로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71년 11월 15일 나이 69세, 법랍 46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신도수경(信徒手鏡)』 · 『잃어버린 나를 찾아』 · 『반야심경강설(般若心經講說)』 · 『금강경대강좌(金剛經大講座)』 · 『마음』 · 『선입문(禪入門)』 · 『신심명강의(信心銘講義)』 · 『나의 인생관』 · 『현대의 위기와 불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