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99㎝, 가로 239㎝. 1682년에 제작되었다. 화면의 중앙을 채운(彩雲)과 산악(山岳)으로 크게 2분한 뒤 상단에는 아미타여래 일행을, 아래쪽에는 성반(盛飯: 잘 차린 음식)과 아귀(餓鬼), 육도 제상(六導諸相), 풍속 장면 등을 배치하였다.
상단의 중앙에는 감로왕(甘露王), 즉 아미타여래가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거느리고 구름 속에 몸을 반쯤 드러낸 모습으로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이 삼존불의 왼쪽[향우]에는 칠여래(七如來)와 비구형 인물이 합장을 하고 서 있으며, 오른쪽[향좌]에는 관음보살·지장보살이 번(幡: 설법할 때 절 안에 세우는 깃대)을 든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과 함께 서 있다.
그 옆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한 여래 1구가 몸을 반쯤 드러낸 채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인물들은 황색·녹색·분홍색의 채운 속에 둘러싸여 있다. 인로왕보살과 비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체를 금색으로 칠하여 붉은색의 가사, 녹색의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함께 화려한 색대비를 보여 준다. 상단과 하단의 사이에는 청록으로 채색된 험준한 산악을 배치하여 천계(天界)와 욕계(欲界)를 구분하고 있다.
하단의 중앙에는 화려한 번과 오곡백과, 꽃 등으로 장식된 시식대(施食臺)가 놓여져 있다. 그 아래에 입에서 불을 뿜는 한 쌍의 아귀를 묘사하였다. 상단의 큼직한 인물 표현과는 널리 하단의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되었다.
시식대의 오른쪽[향좌]에는 백중날 사찰에서 의식을 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비롯하여 먹고 마시고 서로 싸우고 바둑을 두거나 점을 치는 모습,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또 왼쪽에는 전쟁 장면과 걸식하는 장면, 싸우는 장면 등 인간 세상의 모습이 다양하게 전개되어 있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하여 아미타여래의 내영 장면이 크게 부각되어 그려진 점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아미타여래에 의해 아귀고(餓鬼苦)에서 벗어나 극락정토로 왕생한다는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고자 한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유려한 필선으로 그려진 인물의 형태와 밝고 은은한 채색의 설채(設彩)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조선 전기와 후기를 잇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이후 전개되는 빽빽한 군도식(群圖式) 감로왕도의 선구적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