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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전기의 문신 · 학자, 송기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3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 학자, 송기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3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송기수의 8대손 송현필(宋賢弼)이 1753년(영조 29)에 간행했던 것을 1932년 후손 송창록(宋昌錄)이 증보하여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동준(柳東濬)의 서문과 이익(李瀷)의 구서(舊序)가 있고, 발문은 없다.

서지적 사항

8권 4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47수, 권2에 교(敎) 2편, 소(疏) 4편, 차(箚) 5편, 계(啓) 28편, 권3∼5에 계(啓) 111편, 장(狀) 1편, 문(文) 1편, 권6·7에 서(書) 112편, 권8에 잡저 5편, 잠(箴) 2편, 명(銘) 1편, 신도비명 1편, 묘갈 2편, 지명(誌銘) 3편, 묘표 2편, 묘지 1편, 행장 1편, 행적 1편, 호당수계록(湖堂修契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교 2편은 모두 인종의 유교(遺敎)를 왕대비 윤씨가 언서(諺書)로 빈청(賓廳)에 내린 것을 저자가 한역한 것이다. 한 편은 인종의 평소 가언(嘉言)과 행실이며, 다른 한 편은 장례의 절차를 간소화해 민폐를 줄이라는 부탁이다. 학문에 대한 열의와 백성을 근심하는 군주의 마음이 선연하게 그려져 있다.

소 가운데 3편은 「사위훈소(辭僞勳疏)」다. 을사사화에 윤원형(尹元衡) 일파에 가담해 받은 위사공신(衛社功臣) 책봉을 회수해 줄 것을 아뢴 소로, 누명을 쓰고 죽은 윤임(尹任) 등의 무고와 윤원형 등이 정권 쟁취에 동원한 갖가지 방법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어 당시의 정치 사정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차의 「진시사차(陳時事箚)」와 「홍문관차(弘文館箚)」에도 참찬을 지낸 그의 관력답게 많은 책략이 진언되고 있다.

「청기묘제인생존자서용계(請己卯諸人生存者敍用啓)」에서는 사림의 등용을 주장했고, 「논일본객사십조계(論日本客使十條啓)」는 사찰을 너무 강화시켰다는 투정과 방수(房守)를 군인으로 대체해 심부름시키기에 불편하다는 등, 왜관(倭館)에 주둔하는 일본인의 10가지 요구에 그 부당성을 들어 반박한 것이다. 「논일본소청오조계(論日本所請五條啓)」와 함께 당시 일본과의 교역과 사행(使行)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청물이양문대종계(請勿移兩門大鐘啓)」는 숭례문과 흥인문 두 문에 있던 종을 절로 옮겨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그 계에 대한 비답은 쇳소리를 내는 종을 달고 새벽과 저녁으로 쳐서 동쪽과 남쪽의 지운(地運)을 누르는 것은 불리하다고 말하고 있어, 오행에 대한 옛 관념과 함께 두 문에 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 1편은 그가 성절 겸 주청사로 북경에 가서 올린 글인데, 종계변정(宗系辨正: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고려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던 것을 정정한 사실)에 관한 것과 당시 청나라의 사정들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서(書)는 이언적(李彦迪)·김안국(金安國)·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조식(曺植) 등 당대 거유들과 주고받은 것으로, 경전의 훈고(訓詁) 또는 세상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잡저의 「상우록(尙友錄)」은 도잠(陶潛)과 두보(杜甫)를 『시경』을 이은 시인으로 보고, 그들의 시에 대한 경향을 평한 것이다. 「만록(漫錄)」은 학문에서 숙성된 경전의 깊은 뜻을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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