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하는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공자가 노나라 역사를 쓴 『춘추』이다. 전한시대 사마천과 후한시대 초기 반고가 기전체로 역사를 정리하면서부터 중국의 정사는 모두 기전체로 편찬되었다. 후한 때 순열(荀悅)의 『한기(漢紀)』는 편년체로 쓰여졌다. 수 · 당대 이후 역사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는 사관(史館)이 설치되면서, 각 왕의 실록은 모두 편년체로 기술되었다. 북송 때 군주에게 정치적 교훈을 주기 위해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편찬하면서부터 편년체가 크게 발전하였다. 주희의 『자치통감강목』도 편년체 사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편년체 역사서는 일찍부터 편찬되었다. 고구려는 국초(國初)에 『유기』와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이문진의 『신집』, 백제는 고흥에 의해 『서기』, 신라는 거칠부 등이 편찬한 『국사』 등이 있었는데, 모두 편년체 사서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도 사관이 설치되어 역사 기록을 남기고 왕이 죽은 뒤에 이를 정리한 각 왕의 실록은 모두 편년체로 편찬되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 왕의 실록과 승정원에서 매일 일기를 쓴 『승정원일기』, 비변사의 회의록인 『비변사등록』, 왕의 일기인 『일성록』 등도 모두 편년체로 편찬되었다.
당대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왕조의 역사 정리도 편년체로 기록된 것이 있다. 권근의 『동국사략』, 정도전의 『고려국사』, 권제 · 남수문 등의 『고려사전문』, 김종서 등의 『고려사절요』, 신숙주 등의 『삼국사절요』, 서거정 등의 『동국통감』 등 관찬(官撰) 사서와, 박상의 『동국사략』, 유희령의 『표제음주동국사략』, 안정복의 『동사강목』 등도 모두 편년체 역사서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도 편년체이다.
편년체 사서의 장점은 편찬이 용이하다는 점과 역사 기록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편년체는 역사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과 연대가 정확하지 않은 자료를 싣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시대에는 널리 읽히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편년체 역사서가 많이 편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