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사는 일본 나라현 간고오정[漢國町]에 있는 한국과 중국계의 신을 모신 사당이다. 옛 문헌에는 ‘한국사(韓國社)’ 또는 ‘한신사(韓神社)’라고 표기되어 있어, 우리나라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신사유서약기』에 의하면, 593년에 오미와노키미시라쓰쓰미라는 사람이 왕의 명을 받고 ‘소노카미’라는 신을 안치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한다. 712년 겐쇼왕 때 ‘가라노카미[韓神]’라는 신을 다시 덧붙여 모셨다. 1978년부터 신라인의 후예인 다지마모리를 새로운 신으로 모시고 있다.
일본 신도 계통의 것으로 현재는 ‘漢國神社’라고도 표기한다. 『화주구적유고(和州舊跡幽考)』 및 『대화지(大和志)』 등의 옛 문헌에는 ‘한국사(韓國社)’ 또는 ‘한신사(韓神社)’라고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 이 신사는 중국보다 우리 나라와 더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오늘날 이 신사의 보물로서 보관하고 있는 동경(銅鏡)에도 ‘한신사(韓神社)’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신사의 원래 이름이 한국(漢國)이 아니라 한국(韓國)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신사에서 발행하는 『한국신사유서약기(漢國神社由緖略記)』에 의하면, 이 신사는 593년 스이코왕[推古王] 때 오미와노키미시라쓰쓰미[大三輪君白堤]라는 사람이 왕의 명을 받고 ‘소노카미[園神]’라는 신을 안치함으로써 시작된 것으로 되어 있다.
712년 겐쇼왕[元正王] 때 이르러 당시 조정의 실력자인 후지와라[藤原不比等]가 ‘가라노카미[韓神]’라는 신을 다시 덧붙여 모셨다고 한다. 그 뒤 현재까지 이 두 종류의 신을 모시고 있다. 소노카미와 가라노카미는 하나의 짝을 이루어 중세 때까지 일본의 궁전에 모셨던 한국계의 신이다.
이 신들을 한국신사에 안치해서 모셨다는 사실은 이 신사와 일본 궁정과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했던가를 알려 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그 단적인 예로 716년(養老 5) 백제의 왕이 일본 왕에게 선물한 흰 꿩을 당시 왕이었던 겐쇼왕이 신사에 봉납한 예도 있다.
지금도 그 꿩의 무덤이 하쿠치총[白雉塚]이라고 불리며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 신사의 경내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두를 만들어 보급했다고 전해지는, 중국에서 이주한 임정인(林淨因)을 신으로 모시는 린신사[林神社]가 있다. 그리하여 매년 4월 19일에는 제과업자들에 의한 만두제(饅頭祭)가 개최되고 있다.
이곳 린신사에는 1978년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신이 모셔졌는데, 그가 바로 신라인의 후예인 다지마모리[田道間守]이다. 그는 과일을 관장하는 신으로 바로 혈연적으로는 신라에서 도망간 아내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했다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히보코[天日矛]의 후손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스이닌왕[垂仁王]으로부터 총애받는 조정의 중신이었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하고 있다. 다지마모리는 스이닌왕의 명을 받고 바다 저편에 있다고 전해지는 이상향의 세계인 도코요노쿠니(常世國)에 건너가 감귤을 구해서 돌아왔다. 그가 그 과일을 구하기까지는 많은 고초를 겪어야 하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려 풍랑을 헤치고 겨우 줄기와 가지가 달려 있는 감귤을 가지고 왔으나 이미 왕은 죽고 없었다. 그러자 그는 감귤의 반을 왕후에게 바치고, 나머지 반을 왕의 무덤에 바치고는 통곡하다가 왕을 따라 죽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신사는 비록 일본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다고는 하나 모시고 있는 신들은 한결같이 한국과 중국계의 신들이다. 즉, 당시로서는 외국의 신이었다. 이들 신에 대한 정기적인 제사는 매년 2월 23일과 10월 17일에 행하며, 매년 6월 5일에는 진화제(鎭花祭)를 6월 17일에는 삼지제(三枝祭)라는 축제를 열기도 한다.
한편, 이 신사에 있는 문화유산으로는 1614년 오사카[大阪]로 출진하는 도중에 이곳에 들러 참배한 도쿠가와[德川家康]가 봉납했다는 갑옷이 있으며, 또 모모야마시대[桃山時代] 건축양식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는 사전(社殿)은 나라현[奈良縣]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