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월 초 중국 난징에서 신익희(申翼熙)와 윤기섭(尹琦燮)이 민병길(閔丙吉), 김홍일(金弘壹), 연병호(延秉昊), 김사집(金思潗), 정태희(鄭泰熙), 성주식(成周寔), 최용덕(崔用德), 나월환(羅月煥) 등과 함께 결성하였다.
창당 시 당원 수는 40여 명으로 대부분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이나, 나월환과 같은 아나키즘 계열의 인사와 정태희와 같은 좌익계 인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윤기섭과 신익희는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임시정부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이 대개 중국 정부나 중국군에 복무하고 있었다.
윤기섭이 이사장을 맡아 당을 대표하였다. 산하에 안재환(安載煥)을 단장으로 하는 무장단체 철혈단(鐵血團)이 조직되었으며, 기관지로 1933년 7월 창간한 『혁명공론(革命公論)』이 있다. 순한문본으로 1935년 6월까지 총 5호가 발간되었다.
1932년 11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대표 이유필(李裕弼), 김두봉(金枓奉), 송병조(宋秉祚), 광복동지회(光復同志會)의 대표 김규식(金奎植),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대표 최동오(崔東旿), 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의 대표 한일래(韓一來), 한국혁명당의 대표 윤기섭, 신익희 등 9명이 협의하여 조직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에 가입하여 항일 독립운동 단체의 대동단결을 통해 중국 국민정부와의 연합전선을 꾀하였다.
1933년 말 만주에서 중국 관내로 이동한 재만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과 합당을 추진하였다. 당시 양측은 서로를 필요로 하였다. 양당 대표 간 협의는 순조롭게 진쟁되었다. 1934년 2월 25일 남북 각지 독립운동 전선의 통일을 강화하기 위해 양당이 합병하여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을 결성하였다.
신한독립당 중앙위원장에는 홍진(洪震)이, 총무원장에는 윤기섭이 선임되었다. 신한독립당의 결성은 중국 관내 독립운동 세력과 만주의 독립운동 세력이 통일을 이룬 최초의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