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는 ‘가와라진자’라 한다. 현재 이 신사에 모시고 있는 제신(祭神)으로는 가라쿠니노오키나가히메[辛國息長比咩] · 오시호네노미코토[忍骨命] · 도요히메노미코토[豊比咩命]이다. 원래 이 세 신은 본 신사의 배후에 있는 가와라타케[香春岳]라는 산봉우리에 각각 별도로 모셔져 있었다. 제1악(第一岳)에는 가라쿠니노오키나가히메를 모시는 신사가 있었고, 제2악에는 오시호네노미코토를 모시는 신사가, 제3악에는 도요히메노미코토를 모시는 신사가 있었다.
이처럼 예로부터 가와라다케는 그 지역민들에게 신체산(神體山)으로서, 산악 그 자체에 대한 신앙이 두터웠다. 그러던 것이 709년(和銅 2)에 제1악의 남쪽기슭에 사전(社殿)을 짓고 이들 세 신을 합사(合祠)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신들에 대한 또다른 명칭은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에 의하면 ‘잠신(岑神)’이라고도 일컬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신사의 기원에 관해서는 『풍전국풍토기(豊前國風土記)』에 의하면 옛날 신라국에서 신이 일본으로 건너가 이곳 다가와군의 동북부에 있는 스기사카산[杉坂山]에서 흘러 내리는 강가에 살았기 때문에 그 신을 ‘가와라[鹿原]’의 신이라고 불렀다 한다. 여기에서 가와라라는 말은 강가를 나타내는 일본어 발음이다. 이 기록대로라면 이 신사의 존재는 나라시대[奈良時代] 이전부터 있었으며, 또 그 신의 고향이 한반도의 남부 신라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이 신들을 대대로 모셨던 집안인 아카조메씨족[赤染氏族]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인의 후예이며, 또 제신들 이름에서 보이는 ‘가라쿠니[辛國]’라는 말도 원래는 ‘한국(韓國)’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이 신사는 고대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서깊은 일본의 신사이다.
이 신사가 중앙에까지 유명하게 된 것에는 일본 천태종의 개조인 사이초[最澄]의 영향이 크다. 즉, 그가 804년 불교승려로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날 때 항해의 안전을 위하여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으며, 또 산록에 진구원[神宮院]을 건립하였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당에서 돌아왔을 때 다시 이곳을 참배하였던 것이다.
훗날 그는 향춘신사를 히에이잔왕[比叡山王]의 별사(別社)로서 관계를 맺어 유지해 나갔다. 히에이잔이란 일본 천태종의 본산인 엔랴쿠사[延曆寺]를 지칭하는 다른 말로서, 당시 최대의 세력을 가졌던 중앙 불교이다. 이로 말미암아 이 신사가 중앙에도 많이 알려져 865년(貞觀 7)에는 종4위하(從四位下)라는 위계(位階)를 조정에서 받는 등 번영을 이루었다.
그러나 1268년(文永 5)에 화재를 입어 다량의 중요한 문화유산 및 사전(社殿)이 소실되고, 또 1587년(天正 15)에는 소유지마저 도요토미[豊臣秀吉]에 의하여 몰수당하는 등 쇠퇴 일로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뒤 고쿠라[小倉]지역 일대의 통치자였던 호소카와[細川] 및 오가사와라[小笠原] 두 집안의 비호를 받아 서서히 그 사운(社運)도 회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이 향춘신사의 신들은 가뭄, 또는 질병을 퇴치하는 데 영험이 있다고 하여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신들에 대한 제사는 매년 정기적으로 치러지는데, 그 날짜가 근세에는 3월 15일과 16일 그리고 9월 9일에 각각 한 차례씩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까지 제사가 4월 30일에서 5월 1일까지 치러졌다가 또 다시 바뀌게 되었는데, 오늘날에는 5월 5일과 6일에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