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제숙(濟叔). 홍영필(洪永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기관찰사 홍명원(洪命元)이고, 아버지는 효종의 신임을 얻었던 관찰사 홍처후(洪處厚)이며, 어머니는 형조판서 정사호(鄭賜湖)의 딸이다.
1644년(현종 5)에 선공감역(繕工監役)으로서 춘당대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는데 이 때 나이가 49세였다. 이후 사헌부지평과 사간원정언 등 주로 언관직을 역임하였다. 1688년(현종 9) 다시 지평이 되었으나 그의 관인(館人)이 억지로 도판(屠販)을 늘려 설치하였다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670년(현종 11) 정언으로 복직되었으나 같은 해 3월 동료들과 상회례(相會禮)를 하기로 약속하고도 병이 있어 나가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체직되었다. 이후 지평을 거쳐 사헌부장령이 되었다가 56세로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