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화중(和仲). 홍경손(洪敬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헌납 홍윤덕(洪潤德)이고, 아버지는 예문관대교 홍계정(洪係貞)이며, 어머니는 김기수(金期壽)의 딸이다. 형이 이조참의 홍춘경(洪春卿)이다.
1534년(중종 29)의 생원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였고, 153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의 정자·전경·저작·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가 되었지만 동궁의 요속에는 적합치 않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체직되었다.
그 뒤 1543년 종부시첨정으로서 춘추관의 관직을 겸임하였지만 다시 춘추관의 관원으로는 부적격하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춘추관의 관직을 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 『중종실록』을 편찬할 때 장악원첨정으로서 편수관에 참여하였다.
군적낭청에서 1553년(명종 8) 성균관의 추천으로 사유(師儒)가 되었다. 이후 봉상시정을 거쳐 1567년 첨지중추부사로서 북경에 황후책봉을 축하하기 위해 다녀 왔으며, 나주목사와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학문적인 능력은 있었지만 김안로(金安老)에게 아첨하였다 하여 당시 사류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