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명(應明). 홍귀손(洪貴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성 홍이평(洪以平)이고, 아버지는 홍덕윤(洪德潤)이며, 어머니는 유의신(柳義臣)의 딸이다. 부제학을 지낸 홍인경(洪仁慶)의 동생이다.
1549년(명종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성균관유생으로 있을 당시 문정대비(文定大妃)의 총애를 받던 승려 보우(普雨)를 벌할 것을 청하면서 성균관 유생들의 권당(捲堂)을 주도하여 배불운동(排佛運動)에 앞장섰다.
1569년(선조 2)에는 조광조(趙光祖)의 문묘종사를 청하는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572년(선조 5) 별제(別提)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그 해 예문관에 의해 예문관검열로 추천되었다. 그 뒤 사관과 사간원정언을 거쳐, 1584년(선조 17)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특히 장령으로서 청양군 심의겸(沈議謙)이 붕당을 조성한다고 논박하였다. 이후 공조참의와 판결사를 거쳐 1601년(선조 34)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장오죄(臟汚罪: 부정한 뇌물을 받은 죄)를 범하고 옥에 갇혀 있다가 79세로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