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사서,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다(仲多)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9년(인조 17)
사망 연도
1670년(현종 11)
본관
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주요 관직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사헌부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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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사서,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다(仲多). 홍의필(洪義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무적(洪茂積)이고, 아버지는 홍구소(洪九韶)이며, 어머니는 강연(姜연)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5년(현종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그 이듬해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669년(현종 10) 당시 참하문관 중 적체된 자가 많으므로 그 중에서 학행이 뛰어난 자를 6품으로 승진시켜 등용하였는데, 이 때 추천되어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가 되었다.

그 해 3월 사헌부지평이 되었지만 국왕 행차 때 호종을 회피했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직하였다가, 다시 지평으로 복직되었다. 그 뒤 사간원정언이 되었으나 호조판서 오정일(吳挺一)의 탄핵문제로 체차(遞差)되었다가 다시 지평으로 복직되었고, 32세로 졸하였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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