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다(仲多). 홍의필(洪義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무적(洪茂積)이고, 아버지는 홍구소(洪九韶)이며, 어머니는 강연(姜연)의 딸이다.
1665년(현종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그 이듬해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669년(현종 10) 당시 참하문관 중 적체된 자가 많으므로 그 중에서 학행이 뛰어난 자를 6품으로 승진시켜 등용하였는데, 이 때 추천되어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가 되었다.
그 해 3월 사헌부지평이 되었지만 국왕 행차 때 호종을 회피했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직하였다가, 다시 지평으로 복직되었다. 그 뒤 사간원정언이 되었으나 호조판서 오정일(吳挺一)의 탄핵문제로 체차(遞差)되었다가 다시 지평으로 복직되었고, 32세로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