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원(德源). 홍계강(洪係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경창(洪慶昌)이고, 아버지는 경주부윤 홍신(洪愼)이며, 어머니는 신광택(申光澤)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5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예문관검열·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세자시강원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1561년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재임할 당시 큰 도적 김산(金山)을 체포한 공로로 안주목사에 초수(超受)되었다.
그 뒤 함경도대도호부사로서 국경 지방의 중요한 방어책임을 맡았으나 육진에 수재(水災)가 일어나자 그에 대한 수습을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집으로 돌아 갔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그러나 1566년 인천도호부사로 복직되었으며, 그 뒤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당시의 사론에 의하면 명종대 3흉(凶)의 하나로 지목된 이량(李樑)에게 아첨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