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뒤 구릉상에 동서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모두 14기로 동복댐공사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여 있어 1981년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시체를 안치하던 고인돌의 돌방은 모두 동서방향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돌방은 형태에 따라 셋으로 나누어지는데, 그것은 돌널무덤[石棺墓], 깬돌[割石]을 쌓아 만들었지만 주위에 돌이 쌓여 있지 않은 것, 그리고 돌방 주위에 돌을 쌓아 돌방을 보호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하나의 돌널무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뚜껑돌식[蓋石式]이다.
돌방의 크기로 볼 때 이들 돌방들은 펴묻기[伸展葬]나 세골장, 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무덤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나온 껴묻거리는 돌검[石劍]·돌화살촉[石鏃]·돌창[石槍]·민무늬토기편들이다.
이들 고인돌은 당시 이곳에 혈연을 기반으로 하고 살던 족장과 그 가족들이나 이에 버금가는 경제력이 있는 신분들의 공동묘로 생각되고 있다. 이 고인돌들은 형식이나 출토된 껴묻거리로 보아 전라남도 지방의 다른 고인돌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철기시대(서기전 300∼0)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