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백시(伯時). 조선 초기 청백리로 유명한 영의정 황희(黃喜)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사경(黃事敬)이고, 아버지는 장성현감 황징(黃懲)이며, 어머니는 한경서(韓慶瑞)의 딸이다. 동생이 병조판서를 지낸 황윤길(黃允吉)이다.
1552년(명종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며, 156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병조좌랑을 역임하였고, 1573년(선조 6)에는 대간과 시종에 출입한 신하 중에서 이름있는 선비라 하여 해운판관(海運判官)으로 차출되어 직분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1621년(광해군 13)에는 식년무과에 급제한 무인들이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는 폐단을 지적하면서 무과 급제자들을 변방에 보내 방어시키게 할 것을 청하자, 왕이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