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림 맨 하단 좌우에 남아 있는 화기(畵記)에 의하면, 이 괘불탱은 1767년(영조 43)에 두훈을 비롯한 14인의 화승이 태활 등 80여 명의 시주를 받아 조성되었다고 한다. 또 개성괘불기(改成掛佛記)에는 보살형의 주존이 석가불이며, 앞서 봉안되던 통도사괘불이 1766년 성도재일에 모셔졌다가 바람에 찢어지자 이듬해인 1767년에 이 괘불을 다시 조성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괘불의 상단과 좌우 가장자리에는 범자문을 둘렀으며, 원형 두광을 따라 화사한 운문이 둥글게 감싸고 있다. 영락이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형의 주존은 상체가 넓고 둥근 편이다. 좌우 성중들이 생략되고 독존이 화면 중심에 크게 배치된 간략한 구도이다. 보관에는 5구의 화불이 좌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중앙의 여래는 지권인을 취하고 있다. 주존의 손모양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 설법인을 취한 상태에서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려 연화가지를 들고 왼손바닥으로는 연화가지의 밑을 받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화려한 문양이 장식된 불의에 비해 모란꽃이 장식된 신광은 채색이 단순하게 처리됨으로써 불신이 더욱 돋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단정하고 세련된 필선과 안정감 있고 균형 잡힌 신체, 다양하고 섬세한 문양의 표현이 뛰어나 화면에 명랑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 괘불을 조성한 두훈이 1년 앞서 조성한 법주사 괘불(1766년)과 비교해 볼 때 세부적인 표현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화면의 구성이나 크기, 문양, 색감, 도상 등이 동일하여 주목된다.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18세기 조선 영·정조대 불상 도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