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불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남서면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남서면
조각
개념
각 방위마다 불국토가 있고 그 곳에서 상주하며 네 방위를 대표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 부처.
내용 요약

방위불은 각 방위마다 불국토가 있고 그곳에 상주하며 네 방위를 대표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다. 동서남북 및 모든 곳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사방불신앙과 결합하여 통일신라 때 성행했다. 우리나라 사방불은 동쪽 약사유리광, 서쪽 무량수나 아미타로 거의 고정적이다. 그러나 남과 북은 미륵과 석가 혹은 석가와 미륵 등 일정하지 않다. 현재 사방불은 사면석불 6점, 탑에 조각된 사방불 16점 등이 남아 있다.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문경시 사불산 사방불 등이 대표적이다. 방위불은 당대 불교 동향을 가장 잘 반영한 귀중한 자료이다.

정의
각 방위마다 불국토가 있고 그 곳에서 상주하며 네 방위를 대표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 부처.
개설

사방불은 신라인의 불국토 신앙 중 하나인 사방불신앙과 오악숭배사상 그리고 호국사상 등과 결합되어 통일신라시대에 매우 성행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사방불에 대한 내용이 사료에서도 확인될 뿐만 아니라 불교조각 · 회화 · 공예 · 탑의 부조상(浮彫像) 등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연원 및 변천

사방불은 동 · 서 · 남 · 북 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대승불교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초기 대승불교 경전에서는 사방(四方)보다 팔방(八方) 이에 상 · 하를 더해 시방[十方]에 있는 부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후 경전에 사방불이 명시되는 시기는 대략 5세기경으로, 호국경(護國經)의 대표 경전인 『금광명경(金光明經)』과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서 동(東) 아촉(阿閦), 서(西) 무량수(無量壽), 남(南) 보상(寶相), 북(北) 미묘성(微妙聲)으로 등장한다.

이후 『공작왕주경(孔雀王呪經)』, 『약출염송경(略出念誦經)』등의 밀교경전에서 사방불이 확인된다. 8세기경에 한역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에서는 대일여래 혹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함께 오방불의 개념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사방불의 배열은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금강정경(金剛頂經)』을 비롯한 주2 밀교에서는 중앙에 비로자나불, 동(東) 아촉(阿閦), 서(西) 아미타(阿彌陀), 남(南) 보생(寶生), 북(北) 불공성취(不空成就)를, 『대일경(大日經)』을 기본으로 한 주1 밀교는 중앙 대일여래(大日如來), 동(東) 보당(寶幢), 서(西) 무량수(無量壽), 남(南) 개부화왕(開敷華王), 북(北) 천고뇌음왕(天鼓雷音王)이 배치된다. 경전마다 사방불의 이름[명호(名號)]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서쪽은 주3 또는 아미타불로 통일되는 것이 주목된다.

중국의 경우 사면석불과 사방불의 제작은 북위 이후 등장한다. 535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 샤오린스(少林寺)에 있는 비상[碑像: 비석과 같이 길쭉하게 생긴 돌의 네 면에 새긴 불상] 형식의 사방불에는 ‘남방보상여래 (南方寶相如來) 동방아촉(東方阿閦) 북방미묘성(北方微妙聲) 불최진합가서방무량수(佛崔進合家西方無量壽)’이라는 사방불의 명호가 새겨져 있는데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 보이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대일경(大日經)』 · 『금강정경(金剛頂經)』의 사방불이 도상(圖像)으로 거의 고정화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전에 상응하여 조각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게다가 사방불 중 동방에는 중국과 달리 약사불이 조성된 경우가 유독 많아 눈에 띤다. 이는 삼국∼통일신라시대 성행하던 약사신앙과 함께 밀교 경전으로는 『공작왕주경(孔雀王呪經)』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공작왕주경(孔雀王呪經)』에서는 사방불을 동(東) 약사유리광(藥師琉璃光), 서(西) 무량수(無量壽), 남(南) 정방(定方), 북(北) 칠보당(七寶堂)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사방불의 경우 동(東) 약사유리광(藥師琉璃光), 서(西) 무량수(無量壽) 혹은 아미타(阿彌陀)로 거의 고정적이나 남(南)과 북(北)은 미륵과 석가 혹은 석가와 미륵 등 일정하지 않으며, 밀교 경전에서의 사방불과는 더더욱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당시 고대의 불교신앙이 독창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판단된다.

내용

경전에 제시된 사방불은 실제 조각으로 형상화되어 예배의 대상으로 제작되어졌다. 커다란 암석 또는 돌기둥[석주(石柱)] 네 면에 사방불을 조각하였는데, 사방불 외 사면석불로도 불린다. 네 불상의 형식과 크기가 거의 일정하면 사방불, 일정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사면석불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사방불상이 경전에 보이는 사방불과 도상적(圖像的)으로 거의 일치하지 않으며, 명문이 없어 사방불의 명칭을 비교 · 확인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의 경우 불상의 협시보살과 지물 등을 통해 서쪽은 아미타불, 동쪽은 약사불임을 알 수 있는데, 다른 사방불에서도 동은 약사불, 서는 아미타불로 거의 공통적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문경시 사불산 사방불,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 등 많은 사방불이 남아 있다.

이중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은 6세기경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면석불이며,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과 문경시 사불산 사방불은 『삼국유사(三國遺事)』제3권 탑상 제4 사불산 · 굴불산 · 만불산에서 확인된다.

사방불은 돌 네 면에 조각하는 방법 이외 탑과 사리기에 표현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863년의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판사리기가 있다.

현황

사방불은 사면석불 6점, 탑에 조각된 사방불 16점, 사리기 2점 등으로 현재 약 24점 가량 파악된다. 대부분 통일신라시대에 집중적으로 제작되는데 제작 초기에는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을 제외하고는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다 이후 석탑에 사방불이 조각되면서 전국적 양상을 보인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의 사방불상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유독 경전과 도상이 일치하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사방불이 신라에 유입된 뒤 신라 특유의 불국토사상과 오악숭배사상 그리고 당시에 유행하던 신앙의 결합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방불상은 경전에 보이는 사방불이란 형식은 그대로 유지를 하되 신라인들의 사상과 신앙에 따라 불상을 조각하여 당대 불교 동향을 가장 잘 반영한 귀중한 자료이다. 더불어 조각을 통해 고대 불교조각의 기법과 양식 변천을 파악할 수 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의 불상조각』Ⅰ·Ⅱ(문명대, 예경, 2003)
『한국고대불교조각사연구』(김리나, 일조각, 1989)
「통일신라시대 사방불상 연구」(안여진,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한국 사면불상의 연구」(류승진,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예산 사면석불의 미술사적 검토」(정은우,『백제문화』34, 2005)
「통일신라시대 오방불의 도상 연구」(이숙희,『미술사연구』16, 2002)
「한국 사방불상에 관한 고찰」(김성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1)
「7,8세기 신라 및 일본의 불국토사상 : 산악숭배와 사방불」(이기영,『한국종교사연구』2, 1973)
주석
주1

밀교의 이대 법문의 하나. 대일여래의 이성적(理性的) 부문으로 본디부터 있는 영원한 깨달음을 이른다. 모든 중생에게는 본디 평등하게 대일여래의 이성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모태가 아이를 잘 보호하는 기능이 있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샘

주2

밀교의 이대 법문(二大法門)의 하나. 대일여래를 지덕(智德)의 방면에서 설명한 부문으로, 그 지덕이 견고하여 모든 번뇌를 깨뜨릴 수 있다 하여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샘

주3

‘아미타불’을 달리 이르는 말. 수명이 한없다 하여 이렇게 이른다. 우리말샘

집필자
정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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