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09년 제작된 천불도로, 비단바탕의 채색불화로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해서 천불을 묘사하였다.
용문사 천불도는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다불회도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한 폭에 천불을 모두 묘사하였다. 다불회도의 일반적인 특징이 다수의 부처의 모습을 나열해 놓는 것인데, 한정된 공간에 다수의 부처를 가장 합리적이고 온전하게 묘사해 놓을 수 있는 방법이 나란히 몇 줄로 나누어서 그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열하듯이 그리는 방법은 용문사 불화뿐만 아니라 모든 다불회도에 보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불화와는 달리 장식적인 요소들을 없애고 207.0×235.0cm의 화폭에 가로 44불, 세로 23불을 줄을 맞추어 나열하였다. 총 1008불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 중 1000불은 현겁천불(賢劫千佛)이며 나머지 8불은 과거칠불(過去七佛)과 당래미륵불(當來彌勒佛)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경전에 의하면 과거 칠불과 미륵불이 먼저 생겨나고 그 후에 53불을 비롯한 많은 수의 다불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별폭(別幅)의 주불화(主佛畵)를 만들지 않고 천불(千佛)과 함께 주불이 되는 8불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천불도는 유존 사례가 극히 드물어, 화승 도문(道文), 설잠(雪岑), 계순(戒淳), 해영(海英)이 제작한 용문사 천불도는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 천불도는 용문사 소장 석가팔상도와 같은 해인 1709년에 제작된 그림으로 당시 불사와 후원자의 상황을 잘 알려주고 있다. 질서 정연한 배치, 이지러짐이 없는 형상과 필선 등 18세기 초반의 화풍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존하는 천불도는 선운사와 동국대학교박물관에 분산 소장되어 있는 1754년 작품이 있을 뿐 매우 희귀하다. 특히 선운사 천불도가 모두 5폭으로 그려진데 반하여 한 폭에 천불을 모두 그린 것이며, 현존 천불도 가운데 시기가 가장 앞설 뿐만 아니라 많지 않은 18세기 초반 불화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후기 천불신앙을 전해주는 예로서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