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용선도는 중생이 극락정토를 향해 반야의 지혜에 의지해 용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용선은 중생이 피안의 정토에 타고 가는 배이다. 반야용선도는 아미타불 등이 중생을 용선에 태워 인도해 가는 모습의 도상이다. 용선은 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에 보이는 것이 현재 알려진 가장 이른 예이다. 조선 후기에는 반야용선도 도상이 정립되고 반야용선도 명칭도 완전히 정착되었다. 19세기 이후 반야용선을 소재로 하는 다수의 불교가사가 남아 있다. 이로 보아 이 시기에도 반야용선도가 활발히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야용선도의 개념은 반야선에서 비롯된다. 반야선은 중생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정각(正覺)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반야(般若)를 차안(此岸)의 중생이 생사고해를 건너 피안(彼岸)의 정토에 이르기 위해 타고 가는 배에 비유한 것이다.
경전에서 반야선에 대한 언급은 도세(道世)가 엮은 『법원주림(法苑珠林)』과 『제경요집(諸經要集)』, 불공(不空)이 번역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대비심다라니(天手天眼觀世音菩薩大悲心陀羅尼)』와 『인왕반야다라니석(仁王般若陀羅尼釋)』 등 당(唐)대에 저술된 경전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는 권근(權近)의 「대반야경발(大般若經跋)」 (『양촌집(陽村集)』 권22) 과 이첨(李詹)의 「신총랑오재소(辛惣郞五齋疏)」 ( 『동문선(東文選)』 권111) 등 고려 말 조선 초 문인들의 글에서 처음 보인다.
기록에 따라서 반야선은 미륵정토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 나아가는 운송수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아미타신앙에서는 원선(願船), 아미타원선, 사십팔원선(四十八願船), 대비선(大悲船), 자항(慈航) 등으로도 표현된다. 아미타원선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한 아미타불의 사십팔 대원(大願)을 중생이 정토 왕생하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배에 비유한 것으로, 중생은 이 배를 타고 아미타불이나 그의 권속보살의 인도를 받아 서방정토로 간다. 그런데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서원과 자비 또한 반야의 표현이므로 원선이나 대비선, 자항 등은 반야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반야용선도는 미타불과 그 권속이 왕생자를 용선으로 표현한 반야선에 태워 서방정토로 인도해가는 모습을 그린 도상이다. 용선은 선수(船首)나 선미(船尾), 혹은 배 전체를 살아있거나 조각한 용의 머리나 꼬리 혹은 용의 전신 모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토로 향하는 용선의 도상은 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에 보이는 용선이 현재 알려진 가장 이른 예이다. 조선 전기에는 「관경16관변상도」와 「안락국태자경변상도(安樂國太子經變相圖) 」, 「아미타정토도」, 그리고 전라남도 담양 용천사(龍泉寺)에서 간행된 『아미타경』권수판화 「용선도」 등에서 보이고, 1549년 무렵 선조의 어머니 덕흥부원군부인 정씨(德興府院君夫人鄭氏)가 「인접용주회(引接龍舟會)」를 제작한 기록이 알려져 있다. 이 불화들은 모두 아미타신앙계의 설화도나 정토도로, 판화 「용선도」를 제외하면 용선도상은 화면의 부분 요소로 그려져 있고, 화기나 방서(傍書) 혹은 방제(傍題)에서 사십팔용선, 혹은 용선이나 용주로 지칭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불교신앙의 변화에 따라 반야용선 신앙과 도상이 정립되어 ‘반야용선’ 혹은 ‘반야용선도’의 명칭도 완전하게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18세기 작품 몇 점과 다수의 19세기 작품이 전하고 있고 19세기 이후 반야용선을 소재로 하는 다수의 한글 불교가사가 남아있는 점으로 볼 때, 이 시기 반야용선도가 활발히 제작되었고 그 신앙이 대중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반야용선 도상은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나 「극락왕생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용선도상이 여전히 화면의 부분 요소로 그려져 예배상으로 불전에 봉안되기도 했지만, 점차 관경변상도나 정토도에서 독립하여 단독으로 그려진다. 독립 도상으로 그려진 반야용선도로서 대표적인 작품은 충북 제천시 신륵사(神勒寺) 극락전 서측 외벽의 벽화, 경남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북측 외벽에 그려진 벽화와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번(幡), 김해 은하사(銀河寺) 시왕전 동측 외벽에 있던 벽화, 경기도 안성시 청룡사 대웅전 서측 내벽 벽화 등을 들 수 있다. 독립 도상의 반야용선도는 번이나 사찰 전각 내․외벽의 전체 혹은 상방 위를 장식하는 벽화 등 장엄용 불화로 변모함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반야용선에 탄 중생을 이끌어 가는 인도 주체도 다양한 구성을 보이는데, 즉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세지보살, 인로왕보살, 지장보살이 모두 함께 혹은 다양한 조합을 이루면서 등장하다가 점차 선수에서 번이나 삿대를 들고 인도하는 인로보살과 선미에서 호위하는 지장보살이 쌍을 이루는 도상으로 정착되어 간다. 인로보살과 지장보살이 반야용선도에 편입되는 것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영혼천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나아가 정토왕생을 위한 쉬운 방편으로 제시된 염불신앙이 더욱 체계화되고 대중화됨에 따라, 반야용선은 염불 왕생자를 극락의 연지(蓮池)로 실어오는 배로 묘사되거나, 승속(僧俗)과 남녀를 불문하여 염불의 공덕을 쌓은 다수의 중생을 구원하는 배로 그려진다. 때로는 왕생자를 가득 실은 용선에 거룻배를 연결하여 염불왕생의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조선후기 대중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고취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 제작된 반야용선도는 도상이 간략화하거나 현실의 생활상이나 풍속상을 직접 반영하면서 세속화된다. 이 시기 작품으로는 경남 심우사 일심삼관문도(1921년), 서울 안양암 대웅전 극락왕생도, 경기도 파주 보광사(普光寺) 대웅보전 북측 외벽 벽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