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덕 ()

회화
인물
일제강점기 「자화상」 · 「모란대」 등을 그린 화가. 유화가.
이칭
이칭
묵기인(黙祈人), 삭파인(朔坡人)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7년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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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자화상」 · 「모란대」 등을 그린 화가. 유화가.
개설

평양 출신의 화가로 평양지역 미술가 단체인 삭성회에서 활동하고 운영하였으며, 1930년 청도회를 1932년에 오월회를 결성하고 전시회를 개최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3차례 입선하였으며, 서화협회전에 참여하였다. 평양키노 창립에 참여했으며 조선상업미술가협회의 회원이었다. 해방 이후의 활동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생애와 활동사항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를 1925년에 졸업하였다.

1926년 조선미술전람회에 「풍경」으로 처음 입선하였다.

권명덕은 평양의 회화연구소 삭성회(朔星會)에서 유화를 배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삭성회는 1925년 평양부내 유지의 발기로 창설되었고 2년 기한으로 서양화와 동양화를 가르치는 교습기관이자 미술단체였다. 삭성회에서 서양화를 가르치는 김관호와 김찬영은 평양 출신이자 동경미술학교 유학 1세대 유화가로 명성이 있었다. 권명덕은 1927년 삭성회 연구생으로서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을 출품하였다. 같은 해 제7회 서화협회전에는 「풍경」, 「평양교외」를 출품했으며 이듬해 1928년 제8회 서화협회전에 「풍경」을 출품했다. 1929년에는 삭성회의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30년 권명덕은 평양의 젊은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청도회(靑都會)를 결성하고 9월 30일부터 10월 6일까지 평양상품진열관에서 회원들과 중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1932년 1월에는 평양의 영화제작사 평양키노의 창립에 김유영(金幽影), 이계환(李繼煥) 등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같은 해 삭성회의 동료들이었던 최연해(崔淵海), 박영선(朴泳善), 현리호(玄利鎬)와 함께 동인조직 오월회(五月會)를 결성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 권명덕은 「모란대(牧丹臺)」로 입선하였으며 오월회 동인 네 명이 모두 입선하여 언론에 “평양의 자랑”으로 보도되었다. 오월회는 이 해 10월 1일부터 4일까지 평양상품진열관에서 창립회원전을 개최하였다.

1933년 가을에는 금강산을 여행했고 강릉에 머물면서 10월에 개인전을 준비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개인전 개최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36년에는 경성에서 결성된 조선상업미술가협회의 회원으로 참여했다.

참고문헌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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