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유채. 세로 166㎝, 가로 366㎝.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낙원」은 근대 초기 여성 서양화가인 백남순의 유일한 일제강점기의 유화 작품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서양화와 한국화의 형식을 절충한 방법으로 제작하였다. 즉,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이용하되 여덟폭 산수화 병풍의 형식을 따랐다. 이 작품은 작가가 교사로 재직했던 평안북도 정주(定州)의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전시되었다고 하며 친구인 민영순에게 결혼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백남순(白南舜)은 서양화 도입 첫 세대의 여성 작가로, 나혜석 바로 다음으로 유학하여 서양화를 배운 작가이다. 백남순의 작품은 남편 임용련(任用璉)의 작품과 함께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었고 남편과 이별한 이후에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화가로서의 활동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작품이 거의 없다. 이 작품은 백남순의 유일한 일제강점기의 유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형식은 근대 유화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특이한데,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이용하였고 여덟 폭의 산수화병풍의 형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먼저, 화면의 하단에서 상단으로 경물들을 수직으로 누적하여 배치하는 구성은 전통적 공간 구성법이며, 기암괴석의 산세와 원경의 희미한 산봉우리 묘사는 전통적인 화법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전경의 수변을 잇는 다리와 산의 중간중간에 가옥을 포치시키는 법, 수면에 띄워진 작은 배들, 암산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 등의 도상은 전통적 산수화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소재들이다. 또한 8폭이 각각 한 폭의 산수화로 완성되면서도 여러 폭이 서로 이어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방식도 전통적인 산수 병풍의 구성 방식이다. 그러나 초록의 색채와 산의 명암법은 서양화법을 따르고 있으며, 전통적인 준법(皴法)과 수지법(樹枝法)은 전혀 쓰지 않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구성과 형태의 산수화법적인 감각과 색채와 명암의 서양화법적인 감각이 결합되어 독특한 산수-풍경화를 만들어냈다.
자세히 보면 가옥들의 모습도 초가집, 중국풍의 기와집, 서양풍의 저택 등으로 동서양이 공존한다. 한편, 인물들의 모습은 서양화의 모티프들이다. 누드의 여성들이 물가에서 목욕을 마친 풍경, 그물을 끌어올리는 반라의 남성, 아이와 함께 걷는 상체를 벗은 여성, 남녀가 만나는 모습,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 남성 등의 모습은 서양의 이상향인 아르카디아(arcadia)나 에덴동산 등을 그린 신화화(神話畵)나 종교화(宗敎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양에서도 산수경은 도교적, 유교적인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속세를 떠나 은일자적(隱逸自適)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즉 이 그림은 동서양의 이상경의 모티프와 회화적 양식들을 결합시켜서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공간인 ‘낙원’을 그린 것이다.
백남순은 숙명여학교와 제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여자미술학교[東京女子美術學校]에서 1년간 수학하였다. 그 후 1924년 가명(加明)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다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1930년 임용련과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을 했으며 그해에 1930년 튈르리 살롱전(Salon de Tuiltries)에서 「에르블레 풍경(Paysage d’ Herblay)」, 「봄(Printemps)」, 「풍경(Paysage)」을 출품하였다. 귀국하여 부부전을 열었으며 서화협회전에도 출품하였다. 오산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목일회(牧日會) 전시회에 참여하여 작품을 발표했다.
현재 신문지상과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에서 확인되는 흑백도판의 작품들로는 1926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정물」, 「탁상정물」이 있으며, 1927년에도 「정물」과 「풍경」의 입선작을 확인할 수 있다. 1931년에 『동아일보』에 실린 풍경화(1931.1.6.)와 1937년 목시회(牧時會)전에 출품한 「오산부근(五山附近)」(『매일신보』, 1937.6.12.)은 조선의 산촌 풍경을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내었다. 주로 풍경화를 선호하여 그렸던 것으로 보이지만, 「남편의 초상」(『동아일보』, 1930.11.1.)은 드로잉에 몰두하는 남편 임용련과 그를 그리고 있는 백남순 자신의 모습을 그린 흥미로운 실내 인물화이다. 1930년 프랑스에서 귀국하여 동아일보사에서 부부전(夫婦展)을 개최하였을 때 이광수가 쓴 인상기에 의하면 백남순의 화풍은 임용련의 작품이 “주관적 상징적 기분이 농후한 점”에 비교하여 “사실적이고 담(淡)하고 경쾌하다”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