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 높이 167㎝, 너비 63.7㎝, 두께 3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조각가 권진규(權鎭圭)의 미술학교 졸업작품으로, 수업기의 초기 작품세계를 알려주고 있어 중요하다. 권진규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흉상의 테라코타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전신의 석고상이면서 여성 누드를 다룬 것이다.
권진규는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1932년 함흥 상공회의소 주최 공업전시회에 조각 작품 「사슴」을 출품하여 수상하면서 소년 조각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그가 정식으로 조각교육을 받은 것은 1949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學] 조각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지도교수는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 18971981)였다. 시미즈 다카시는 유화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유학하였으나 로뎅의 제자인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 18611929)에게 감명을 받고 그에게 조각을 배운 후 귀국하여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와 무사시노미술학교의 교수를 지내고 일본의 전후 구상 조각의 주요 작가로 활동하였다.
「나부」는 권진규가 무사시노미술학교를 졸업하던 1953년에 제작한 작품으로, 높이 167㎝의 등신대이다. 이 작품을 통해 학교 수업인 실제 모델을 보고 인체의 형태를 재현하는 아카데믹한 제작 훈련을 작가가 성실히 따랐음을 보여준다. 조각의 자세는 왼쪽 발을 굽혀 내민 고전적인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이지만 얼굴 표정과 육체에 잡힌 살집 등의 묘사는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은 사실성을 보여준다. 엉덩이와 복부의 볼륨이 강조되어 전체적으로 육중하고 풍만한 느낌을 주며, 표면은 매끄럽지 않고 거칠고 투박하게 질감을 드러내어 표현성을 강화했다. 이러한 고전적 자세의 여성 나부상은 스승인 시미즈 다카시의 주된 작품 소재이다. 그러나 시미즈 다카시의 매끄러운 표면의 브론즈(bronze) 작품과 비교하여 권진규의 작품은 신체 묘사가 좀 더 사실적인 점과 표면이 거칠고 투박한 면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이렇게 투박하고 표현적인 질감의 묘사는 권진규의 이후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개성이다.
권진규의 여성 누드상은 전체 작품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편이다. 초기의 여성 누드 조각인 1954년의 「여인 입상」은 높이 59㎝의 소형 석고 조각에 건칠(乾漆)을 한 작품이다. 이 조각상의 얼굴 세부는 간략하게 묘사되었고 신체 비례와 자세는 시미즈 다카시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고전적 누드의 자세이나 역시 건칠에 의해 강조된 표면의 거친 질감이 개성적이다. 이외에 여성 누드 작품들은 주로 1960년대 후반에 제작되었는데 이 시기의 누드상들은 서 있는 자세보다는 웅크리거나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나부」는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서 아카데믹한 조각 수업을 충실히 받았음을 보여주면서도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재학 중인 1952년 일본의 이과전(二科展)에 「백주몽(白晝夢)」으로 입상했으며, 졸업하던 1953년에는 「기사」 등이, 1954년에는 「마두」 등이 입선하면서 조각가로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하였다. 1959년에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덕성여대 미술대학 등에 강의를 하면서 국내와 일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순수작품 활동 이외에 일본에서는 마네킹 제작일을 하거나 귀국해서는 영화 「이순신」의 세트 제작을 맡기도 했다. 서양 고대의 모티프에 영감을 받은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 1901~1980)와 부르델 등의 영향을 보여주는 테라코타 작품들과 단순화된 형태로 정신적 핵심을 드러내는 인물 흉상을 제작하였으나 당대에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정신적 고통과 병환으로 1973년에 스스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