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 액자 (고기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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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작품
문신이 1948년에 제작한 유화 및 액자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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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문신이 1948년에 제작한 유화 및 액자 조각.
개설

조각가 문신(文信)은 미술수업 초기에 유화를 그렸다. 그의 초기 작품인 유화에 부조로 직접 조각한 액자를 씌운 회화와 조각이 결합된 작품이다. 고기잡이라는 주제를 회화와 조각으로 변주하여 조화시킨 이채로운 작품이다.

내용

그는 1923년 일본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문안신(文安信)이며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5세에 한국에 이주하여 마산에서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1939년부터 도쿄의 니혼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 양화과에 입학하여 1945년에 졸업하고 해방 후 귀국하였다. 유학을 떠난 이유는 유화를 배우기 위해서였으며 귀국 후에도 계속해서 유화 작품을 제작하다가, 1961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서 조각을 시작하였고 이후에는 조각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196165년간과 196780년간에 프랑스에 정착하여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고 귀국 후에는 고향인 마산에 미술관을 세우면서 활동하였다. 그의 조각 작품은 유기체적인 형태를 기초로 생명의 근원적인 역동성을 표현하면서 균형과 불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추상조각이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은 그가 니혼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마산에 정착하여 단체전과 개인전에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제작한 것이다. 그는 1947년에 조선미술동맹전에 「풍경」을 출품하였다. 이 전시회는 미소공동위원회 속개를 축하하는 전람회로 서울, 대구, 대전, 광주로 이동순회전을 하는 것이었으며, 5월 31일부터 6월 5일까지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개최되었다. 1948년에는 제1회 문신개인전을 열었는데, 1월에는 마산다방에서, 이어 3월에는 서울 동화백화점에서, 10월에는 부산에서 순회전을 개최하였다. 이 순회 개인전에 대한 전시평에서 김만형(金晩炯)은 그의 작품이 “자연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남향(南鄕)적인 정열”에서 우러나온다고 평가했다. 1949년에는 제2회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작품은 1948년에 제작하여 1949년의 2회 개인전에 출품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에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건장한 남성들이 그물을 끌어 올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멀리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상체를 벗은 건강한 황금빛 육체의 남성 8명이 오른쪽 하단에서부터 그물을 끌어당기면서 저마다 힘을 쓰는 자세로 묘사되었다. 좌측 중앙의 한 명은 멀리 떠가는 배를 향해서 무언가 고함을 치는 자세를 취하여 전경과 원경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이 유화를 둘러싼 액자에는 해녀처럼 보이는 여성들이 수중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작가는 그림의 내용과 맞춰 액자 조각을 하였던 것이다. 남성을 그린 유화와 조화를 이루며 ‘고기잡이’라는 주제를 반복한다. 우측 상단에는 제작 연월과 작가의 사인이 “48.8 moon”이라고 적혀있고 “信(신)”이라는 주문방인이 찍혀 있다.

작가는 마산(현 창원시)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고기잡이를 목격한 경험이 풍부하였고 그 기억을 토대로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그가 자라난 자연환경인 바다를 그린 작품으로 현재 확인되는 것은 「마산 앞바다」(1946), 「바다」(1947), 「암초」(1948) 등인데, 1회 개인전의 작품목록에 5점이 바다와 관련된 제목이었다. 특히 이 화폭처럼 가로로 긴 사이즈로 제작된 작품도 「아침바다」(1952), 「바다」(1947), 「잔설」(1947) 등으로 몇 점 더 있어서, 작가가 파노라마식 풍경을 그리기 위해 좌우로 긴 화폭을 선호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는 풍경보다도 사람들의 집단적인 노동의 작업을 형상화하는데 좌우로 긴 화폭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누드의 인물 여럿이 군상으로 등장하여 역동성을 표현하는 작품인 이쾌대의 「군상」시리즈도 1948년을 전후하여 제작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해방 직후 국가 수립기에 화가들의 정신적 표상물로 군상의 누드 인물상이 선호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950년에는 50년미술협회가 결성되었는데 이때 추천회원이 되었다. 1951년에는 전쟁으로 피난 수도인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종군화가단에 복무했고, 대한미술협회주최의 전시미술전람회에 참가했다. 화단 현대화의 물결이 드높던 1950년대 후반에는 1957년 결성된 모던아트협회에 유영국, 박고석, 한묵 등과 참여하였고 1961년에는 프랑스에 유학을 떠남으로서 화력의 전환기를 맞았다.

참고문헌

『근대문화유산 조각분야 목록화 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11)
『한국현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2006)
숙명여자대학교문신미술관(www.moonshin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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