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489.0㎝, 가로 308.0㎝ 크기의 면 바탕에 채색으로,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과 문수동자, 보현동자를 그렸다. 2009년 6월 4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가모니불은 편단우견에 항마촉지인을 하였고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통견에 설법인을 하였다. 양 불의 설법인은 좌우대칭이어서 그림에 균제미를 더하였다. 삼불 아래 향우측에 푸른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향좌측에 흰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모두 연꽃을 들었다. 이 도상은 당시 경기지역 괘불의 유행 현상이다. 사자를 청색으로 한 것은 오방색에서 동쪽 색인 청색을 따른 것이다.
1909년(융희 3) 사자암 괘불은 1901년(광무 5) 동대문 연화사 괘불을 이용하였다. 사자암 괘불을 그린 한곡당(漢谷堂) 돈법(頓法) 스님이 8년 전 연화사 괘불을 그린 인연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연화사 괘불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대세지보살, 왼쪽에 관세음보살이 나왔었는데, 사자암 괘불은 석가불을 중심으로 각각 약사불과 아미타불로 바꿔놓았다.
약사불과 아미타불의 수인은 보살들이 꽃을 든 모습과 같다. 또한 연화사 괘불에 있던 가섭과 아난존자를 생략하였다. 그래서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의 크기가 당대 경기지역 괘불의 그것에 비해서 훨씬 커졌다.
도상이 단순한 것은 세로 5미터에 달하는 큰 화폭을 스님 둘이서만 맡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초본이 계속 변형되면서 발생하는 양식화의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화기에는 ‘영산탱(靈山幀)’이라고 되어있고 대황제폐하, 황후폐하, 황태자전하[순종 · 순정효황후 · 영친왕]의 수명 장수를 기원하여 8월에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