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389㎝, 가로 268㎝ 크기의 면 바탕에 채색으로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 모임을 함께 그렸다. 2009년 9월 11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화면 구성은 세 여래를 중심으로 대좌 앞에 각각 협시보살이 자리하였고, 위에는 십대제자 가운데 아홉 제자가 자리하였다. 그림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자리하였다. 매우 단순한 구성의 삼세불도이다.
석가모니불을 크게 하고 약사, 아미타불은 작게 하여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였다.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만 편단우견이고 설법인의 두 부처는 오른쪽 어깨를 반쯤 가렸다. 협시보살 가운데에는 백의를 입고 정병을 든 관세음보살이 석가모니불의 협시로 나왔고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합장한 지장보살이 나왔다. 나머지 보살들은 합장하거나 꽃을 들어 이름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 문수, 보현보살 대신에 관음, 세지보살을 그린 것은 전각이 극락보전이므로 아미타신앙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가섭과 아난이 석가모니불 두광 좌우에 자리한 것은 정식이지만, 공간 부족으로 열명 제자 가운데 한 명을 표현 못한 것은 구성의 불완전함이다. 사천왕은 오른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동방지국천(東方持國天), 남방증장천(南方增長天), 서방광목천(西方廣目天), 북방다문천(北方多聞天)이 제대로 자리하였다.
불보살들의 어깨가 넓은 것은 약효 그림의 특징이지만, 이는 조선 불화가 19세기 양식화된 하나의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상호는 단정하면서도 밝아 전체 분위기는 경직되지 않았다. 색채는 적색과 녹색을 주로하고 청색도 사용하였다. 녹색의 경우에는 이 시기 대부분의 불화에서 볼 수 있듯이 안료의 결함으로 인해 색이 균일하지 않다.
극락보전 후불 탱화로는 드문 삼세불도이다. 그림을 그린 우두머리 스님 약효는 19세기 후반 충청도 지역의 삼세불도를 다수 제작하였는데, 복천암 삼세불도도 그중 하나이다. 약효는 동시에 복천암 산신각 안에 봉안한 산신도, 칠성도, 독성도 등도 그려냈다. 당시 불화계에서 약효의 활동력을 가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