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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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인물
조선후기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 쌍계사 국사암 칠성도, 범어사 대웅전 석가모니불도 등을 그린 승려. 화승.
이칭
이칭
묘영(竗永), 묘영(妙永), 묘영(竗英), 묘영(竗寧), 묘영(妙寧), 묘영(妙暎)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목차
정의
조선후기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 쌍계사 국사암 칠성도, 범어사 대웅전 석가모니불도 등을 그린 승려. 화승.
활동사항

1866년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와 대흥사 진불암 지장시왕도부터 1907년 흥국사 보광전 아미타불도까지 41년 동안 전라도와 경상도 사찰을 중심으로 4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40여 점 가운데 18점은 암자에 봉안된 그림이고 19점은 전라도 사찰에 걸려 있다. 13여 종류의 불화를 그렸으며 특히 칠성도, 독성도 등을 많이 그렸다.

전라도 화승인 천여(天如), 기연(奇衍), 취선(就善) 밑에서 불화를 그리다가 1879년부터 수화승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수화승으로 오른 1879년 한 해에 6점, 즉 쌍계사 국사암 칠성도, 송광사 광원암 지장시왕도, 선암사 염불암 신중도, 선암사 독성도, 낙안 금전산의 금강암 지장보살도, 무위사 칠성도를 완성하였다.

가장 많은 불화를 봉안한 절은 송광사와 그 부속 암자로, 송광사 자정암 칠성도(1867), 광원암 지장시왕도(1879), 산신각 산신도(1896), 청진암 지장시왕도(1900), 감로암 석가모니불도(1904) 등 총 7점이다. 그리고 선암사에 5점, 즉 비로암 비로자나불도·지장시왕도·칠성도(1869), 신중도(1879), 독성도(1879)가 있고, 쌍계사에 국사암 칠성도(1879), 승당 아미타불도·현왕도(1888), 독성도(1890) 등 5점이 봉안되어 있다. 이밖에 대흥사 3점, 용화사 3점, 흥국사 3점, 화엄사, 벽송사, 무위사, 범어사, 해인사, 백양사, 파계사 등에 각 1점씩 봉안되었다.

묘영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천여(전라도), 기전(경상도), 약효(충청도) 등 각 도를 대표하는 화승들 밑에서 불화를 익혀, 다른 화승들과 달리 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면서 많은 불화를 그렸지만 쇠퇴하는 조선불화 수준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색은 탁하고 선은 힘이 없으며 상호는 원만하지 않다. 화면을 꽉 채워 묘사한 점은 묘영이 그린 불화 전반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영은 여러 지역에서 많은 불화를 그려 조선 불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참고문헌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성보문화재연구원, 2011)
『조선후기승장인명사전』불교회화(안귀숙·최선일, 양사재, 2008)
집필자
탁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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