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 2단으로 나누어진 화면의 상단에는 삼신불을 그리고 하단에는 보살들을 일렬로 배치시킨 형식의 그림이다. 화기를 통해 1891년(고종 28)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로 217.0㎝, 가로 256.2㎝ 크기의 세로에 비해 가로가 긴 면바탕에 채색을 베푼 불화로, 2009년 11월 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불화는 세로에 비해 가로가 긴 화면으로, 상단에는 삼신불이 나란히 앉아있고, 하단에는 보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삼신불은 중앙에 지권인(智拳印)을 취한 법신 비로자나불, 왼쪽(향우)에는 양손을 어깨 높이로 들어 설법인(說法印)을 취한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향좌)에는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한 화신 석가모니불이 자리하고 있다. 삼불은 모두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비하고, 목리문(木理文: 나무결 무늬)이 표현된 불단 위의 연화좌에 앉아 있다. 삼신불 주변과 가장자리에는 보살 6위, 범천과 제석천, 시방제불 등이 배치되었다. 또한 비로자나불의 무릎 앞쪽에는 합장형의 가섭과 아난존자가, 양 끝에는 합장형 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하단에 일렬로 늘어선 8위의 보살은 모두 원형의 두광과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방형의 신광을 갖추고 있다. 모두 각기 지물(持物)을 들고 있으며, 지장보살을 제외한 모든 보살은 동일한 모습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이 그림은 19세기 중엽부터 서울 · 경기 지역에서 활발하게 불화를 제작한 경선당(慶船堂) 응석(應碩)이 주도한 작품이다. 응석은 전통적인 화법을 계승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변화를 주어 새로운 도상을 창출하였다. 또한 갸름한 얼굴에 지극히 작은 이목구비, 꽃무늬가 새겨진 대의, 적색과 녹청, 군청의 색조, 목리문의 표현 등 응석 불화에서 볼 수 있는 양식적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다.
화면의 왼쪽 하단에 시주질이 기록되어 있어 있는데 상궁 박씨와 김씨 등이 명성황후 민씨를 위해 시주한 불화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불화는 19세기 서울과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 응석이 주관하고 대선사 하은(荷隱) 예가(例珂, 1828~1898)가 증명한 불화로 독특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또한 명성황후를 위해 상궁들이 시주하여 제작하였다는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