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블레의 풍경 (Herblay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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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임용련이 1930년에 그린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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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임용련이 1930년에 그린 유화.
개설

카드 보드에 유채. 세로 24.2㎝, 가로 3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1930년에 임용련(任用璉)이 프랑스 에르블레(Herblay)의 풍경을 그린 유화이다.

내용

에르블레는 파리 서북쪽 근교의 마을로, 센(Seine) 강변 북안에 위치해 있다. 폴 시냑을 비롯하여 19세기 말 프랑스의 화가들은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에르블레의 센 강변을 자주 그렸다. 임용련은 1929년 미국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졸업하고 1930년에 프랑스 파리로 왔으며, 1928년에 이미 유학을 와있던 백남순을 만나 결혼하였다. 이 그림은 임용련이 결혼을 한 후 프랑스에 머물면서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백남순도 같은 제목의 「에르블레 풍경(Paysage d’Herblay)」을 그려서 1930년 파리의 튈르리 살롱전(Salon des Tuileries)에 출품했다.

이 그림은 작은 하드보드지에 즉석에서 빠르게 풍경을 스케치한 것이다. 우측 상단에는 제작 연도인 “1930”과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인 임파(任波)를 영어로 표기한 “P. Yim”이라는 서명이 보인다.

임용련은 1919년 중국의 진링대학[金陵大學]에 유학했으며, 중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는 임파라는 중국인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받았다고 한다. 이후 미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시카고 미술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을 했던 대부분의 서양화가들과 달리 이종우, 장발 등과 더불어 서구에 직접 유학하여 서양화를 배운 희귀한 작가군에 속한다.

임용련은 귀국 후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했는데 그 가운데는 이중섭도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월남하는 과정에서 작품들을 대부분 소실하였고 임용련 자신은 납북 후 생사불명이 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작품의 수가 극히 적다. 이 그림은 백남순의 친구인 민영순이 소장하고 있다가 1982년 미술사학자인 이구열의 소개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임용련이 포착한 그림 속 강변의 풍경은 주택이 밀집한 북안에서 들판으로 이어지는 반대편을 바라본 모습이다. 전경의 주택은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였으나 원경의 강물과 강 저편의 나무, 하늘 등은 몇 번의 붓질로 간단히 묘사하면서도 매우 능숙하게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냈다. 다소 거친 필치는 야수주의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색채는 온화하며 형태의 원근감은 사실적이다. 근경의 벽돌 건물들과 그 너머 펼쳐지는 센 강변의 모습을 작은 화폭 안에 요령있게 배치해 넣은 솜씨는 세련되었다. 원경의 나무와 물의 표면, 근경 주택의 벽면은 긁어내는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강 건너 하늘의 색으로 보아 석양 무렵으로 보이며 나무들의 무성함으로 미루어 초여름 풍경으로 추측된다. 작가는 그해 10월에 귀국하여 부부가 함께 귀국전을 열었다.

임용련은 이러한 속필의 생략적인 풍경화 양식 외에도 보다 고전적이고 상징적인 화풍을 정식으로 배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예일대학교의 스승이었던 유진 프란시스 세비지(Eugene Francis Savage, 1883~1978) 풍의 드로잉 작품인 「십자가상」이 확인되었는데, 이것은 가늘고 긴 인체의 인물들이 드라마틱한 몸짓으로 예수의 십자가상을 둘러싸고있는 종교화이다. 또한 퓌뷔 드 샤반느(Puvis de Chavannes, 1824~1898)를 연상시키는 양식으로 세 명의 여성이 그려진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의 「묵상」이 양주동(梁柱東)의 시집 『조선의 맥박(脈搏)』(1932)에 흑백 도판으로 실려있다.

참고문헌

『한구근대양화선집』양화1(금성출판사, 1990)
「1920-30년대 파리 유학 작가 연구」(이지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집필자
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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