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양암 아미타괘불도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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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양암 아미타괘불
서울 안양암 아미타괘불
회화
유물
문화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양암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강점기 아미타괘불도.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양암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강점기 아미타괘불도.
개설

200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690㎝, 가로 324㎝. 안양암 아미타괘불도는 1919년 화승 고산축연(古山竺演)이 제작한 약 7미터 크기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로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동자형의 문수 · 보현보살, 가섭 · 아난의 존상들로 간략히 구성되어 있다.

내용

안양암 아미타괘불도는 일제강점기인 1919년 화승 고산축연(古山竺演)이 제작하였다. 괘불은 야외 의식 때 사용되는 대형의 불화이므로 평소에는 안양암 대웅전 내부 출입구 위쪽 목제 괘불함에 말아서 넣어 보관하고 있다. 근대기의 괘불은 기존에 비해 6미터 전후의 비교적 작은 괘불로 제작되는 경향이 있는데, 안양암 아미타괘불도는 7미터 가량으로 이보다는 조금 크게 제작되었다. 안양암은 창건 당시부터 아미타삼존불상과 후불도를 모시는 등 아미타신앙을 중시하였으며 이에 따라 아미타삼존을 그린 괘불도가 제작되었다.

화면의 중앙에 당당한 모습의 아미타여래가 붉은색 대의를 입고 서 있으며, 오른손은 밖을 향해 아래로 뻗었고 왼손은 가슴께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결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1905년에 제작된 범어사 괘불도의 도상과 유사하다. 그 양쪽에 협시보살이 자리하였는데, 백의의 관음보살은 왼손에 작은 호(壺)를,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었고 반대편의 세지보살은 양손으로 연화가지를 받쳐 들고 있다. 이들 아미타삼존은 손과 발이 유독 작게 그려져 비례가 맞지 않는다. 그 앞으로 코끼리를 탄 동자형의 보현보살과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붉은색과 청색의 연화 가지를 들고 있다. 이들 뒤로는 합장을 한 가섭과 아난이 자리하였고, 화면 아래부터 위쪽으로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 괘불도의 제작자인 고산축연은 근대기에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불화를 남겼는데, 그의 현전하는 작품들 중 많은 수가 서양화의 음영법을 사용하였다. 이 작품도 전체적으로 음영법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화기에 의하면 고산축연이 단독으로 제작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느껴지고 존상들의 상호도 원만하게 그려진 수작이다. 아난의 미소 띤 얼굴과 흐드러지게 표현된 세지보살의 연꽃에서 고산축연 특유의 화풍이 엿보이며, 호랑이를 섞어놓은 듯한 사자의 얼굴과 위패형으로 만든 화기란 등 독특한 표현에서 제작자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붉은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고 청색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의의와 평가

간략화된 구성과 색채, 음영법의 사용에서 근대기 불화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당대 유명한 화승이었던 고산축연의 개인 화풍이 잘 드러나는 수작이다.

참고문헌

『안양암에 담긴 정토신앙의 세계』(한국불교미술박물관, 2004)
「20세기 전반 불화의 새로운 동향과 화승의 입지-서울 안양암의 불화를 중심으로」(최엽, 『미술사학연구』266, 한국미술사학회, 2010)
「고산당 축연의 불화 연구」(최엽, 『동악미술사학』5, 동악미술사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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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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