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 응열의 생몰년은 알 수 없으나 그가 1650년부터 1673년까지 충청남도 공주, 연기, 예산 등지에서 기념비적인 대규모 괘불화를 조성하였다. 1650년 갑사 괘불화 화기에 법명이 처음 등장하며 이후 비암사, 신원사, 수덕사 등의 괘불화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불화 제작에 관여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응열은 1650년에 충청남도 공주 갑사 괘불화 제작에 수화승 경잠(敬岑)의 보조화승, 1657년에 충청남도 연기 비암사 괘불화 제작에 수화승 신겸(信謙)의 보조화승으로 각각 참여하였다. 이후 수화승으로 두각을 나타낸 작품은 1664년 신원사 괘불화와 1673년 수덕사 괘불화이다. 묵서 화기에 의하면 신원사 괘불화와 수덕사 괘불화 제작에 수화승 응열 외에도 학전(學全)과 석능(釋能)이 동시에 참여하였다. 즉 응열은 충청권역 내에서 활동한 화승으로 경잠과 신겸 아래 보조화승으로 참여하다가 이후 신원사와 수덕사의 괘불화 제작에서 수화승으로 활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응열이 수화승이 되어 주도한 불화는 삼신도상 가운데 설법인의 대관보살형(戴冠菩薩形) 노사나불도상이다. 이 도상을 그린 불화 가운데 신원사 괘불화가 선두격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어 수덕사 괘불화가 제작되었다. 두 불화 모두 17세기 후반에 충청권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대관보살형 도상이 이 지역에 편재된 현상과도 관련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 두 불화에 묘사된 오색 찬연한 광염 물결 표현은 바로 노사나불 진신의 신변 연출의 시각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괘불화 가운데 현실 속세의 영산 도량에 노사나불의 현현(顯現)과 이에 응하는 시방세계 불보살들의 표현에서 그의 기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