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1년 선암사 각황전 아미타불도(소재 불명)부터 1802년 선암사 나한전 삼세불도·신중도까지 51년 동안 선암사를 중심으로 한 11개의 사찰에서 31점의 불화를 그렸다. 이 중 괘불도가 6점이나 되고 삼세불도는 4점을 제작했다. 선암사[각황전 아미타불도(소재불명, 1751) 괘불도·팔상전 33조사도(1753), 삼세불도(1765), 팔상전 팔상도·화엄경변상도(1780), 운수난야 지장보살도(1796), 운수암 신중도(1796), 나한전 삼세불도·신중도(1802)], 흥국사[괘불도(1759)], 백련사[삼세불도(소재불명, 1765), 삼장보살도(소재불명, 1773)], 불갑사[팔상전 석가모니불도·대웅전 신중도·지장전 지장보살도(1777)], 태안사[대웅전 석가모니불도·삼장보살도·신중도(1777, 명적암 신중도(소실, 1777)], 금탑사[괘불도(1778)], 송광사[국사전 16국사진영(13국사진영 도난, 1780)], 현국사[대웅전 삼세불도(1780)], 만연사[괘불도(1783)], 용문사[괘불도(1769)] 등 대부분 전라도 사찰을 중심으로 불화를 제작하였다. 예외적으로 경상북도 상주 남장사 명부회도(소재불명, 1788) 제작에 참여하였다.
스승은 비현(丕賢)이며 함께 30여 년간 일하였고 1765년 처음 수화승으로 불화 제작에 참여하였다.1778년부터 1802년까지 도옥(道玉), 섭란(攝蘭), 도일(道鎰), 교환(敎桓), 찰민(察敏) 등을 키워냈다. 쾌윤의 대표 작품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한 16국사 진영인데 1995년 1월 27일 13국사 진영을 도난당하였다
쾌윤의 화풍 특성은 여러 그룹의 성중(聖衆)들을 요약해서 표현한 점이다. 쾌윤 선배들의 불화가 종합적 성격이 강했다면 쾌윤 불화는 반대로 성중들의 핵심만 묘사하여 간결하다. 대신에 본존 크기가 다른 성중에 비하여 월등하게 커졌다.
성중들의 상호는 둥글고 큰 얼굴에 눈·코·입은 작고 가운데로 몰렸는데 입술은 빙그레 웃는 모습이다. 전라도 불화의 모범인 의겸화파의 근엄한 상호와는 확실히 다르다. 동자처럼 앳된 모습을 한 성중들의 얼굴은 쾌윤만의 도상 특징이다. 색채는 옅은 색을 사용하여 가볍고 맑다.
쾌윤의 도상 근원은 멀리 고려 불화까지 올라간다. 쾌윤이 그린 지장보살 권속 중에 무독귀왕은 경궤를 들고 도명존자의 육환장 고리 안에 비로자나불이 등장하는 모습이 고려불화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편 쾌윤은 명대 화보인 『홍씨선불기종』에 있는 도상을 응용하여 조선 불화의 도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