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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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인물
조선후기 선암사 삼세불도, 용문사 괘불도, 불갑사 팔상전 석가모니불도 등을 그린 승려. 화승.
이칭
이칭
평삼(評三), 평삼(萍三), 화암당(華岳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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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후기 선암사 삼세불도, 용문사 괘불도, 불갑사 팔상전 석가모니불도 등을 그린 승려. 화승.
활동사항

1765년 선암사 삼세불도부터 1808년 옥천사 괘불도까지 40여 년간 그린 12작품이 남아 있다. 전라도 화승 비현과 쾌윤 밑에서 강진 백련사[대웅보전 삼세불도(1765, 도난), 대웅보전 삼장보살도 (1773, 도난)], 선암사[삼세불도(1765)], 남해 용문사[괘불도(1769)], 영광 불갑사[팔상전 석가모니불도·지장전 지장시왕도(1777)], 곡성 태안사[대웅전 삼세불도·삼장보살도·신중도(1777, 소실), 명적암 신중도(1777, 소실)]의 불화를 그리다가 1781년 경상남도 하동 쌍계사 삼세불도·삼장보살도·신중도부터 수화승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경상남도에 머무르며 의령 수도사[감로왕도(1786)], 하동 쌍계사[화엄경변상도(1790, 도난)], 고성 옥천사[괘불도(1808)]의 불화를 제작하였다. 예외적인 불사는 1800년 경기도 고양 상운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개금에 참여한 것이다.

평삼은 비현, 쾌윤과 여러 불화를 같이 하였고 수화승으로 새로운 구성과 도상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이전의 좋은 초본을 이용하여 더욱 풍부하게 꾸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평삼이 쾌윤의 불화를 계승했다는 사실은 쾌윤이 수화승으로 작업했던 백련사 삼장보살도와 평삼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쌍계사 삼장보살도의 기본 구성과 도상이 비슷한 점에서 알 수 있다. 다만 평삼의 쌍계사 불화에서 성중 수는 더 많아지고 화려해졌고 삼장보살 좌우협시 여섯 성중 모두가 정면을 향해 서 있어 구성은 단조로워졌다. 이는 쾌윤의 백련사 삼장보살도 구성이 가지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천들의 시선 방향을 바꾼 결과이다. 이것은 평삼의 작품이 가지는 한계이자 평삼이 활동했던 시대의 한계이기도 하다. 한편 옥천사 괘불은 평삼의 마지막 작품이자 정조 시대의 괘불 전통을 잘 이은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성보문화재연구원, 2011)
『조선후기승장인명사전』불교회화(안귀숙·최선일, 양사재, 2008)
집필자
탁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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