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정감구봉수지도」는 1579년(선조 12) 1639년(인조 17) 정립의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제작된 계회도 형식의 기록물이다. 이 기록물은 진사시에 입격한 동방(同榜) 5인의 자제들이 선친의 동방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정립(鄭雴)의 84세를 맞아 축하하는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발문과 7언시에 의하면, 이 모임은 역참이 있었던 증약에서 1637년(인조 17) 음력 11월에 이루어졌고, 좌목에 의하면 족자를 완성한 시기는 모임 2년 후인 1639년으로 보고 있다. 2019년 6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그림 상단에는 표제(表題)인 "역정감구봉수지도(驛亭感舊奉壽之圖)"가 해서체로 쓰여 있다. ‘역정’은 역참(驛站) 인근의 누정이라는 뜻이고, ‘감구’는 지난 일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다는 의미이며, ‘봉수’는 장수(長壽)를 축원한다는 뜻이다.
이 계회도는 1637년 문신 정립(鄭雴)이 84세를 맞이하자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1579년(선조 12)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한 동방(同榜) 5인의 자제들이 발의하여 모임을 갖고, 2년 후인 1639년에 만든 계회도이다. 정립의 동방들은 이미 사망하여 그 자제들이 대신 참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의 계회도의 형식에 따라 표제, 그림, 발문, 좌목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발문의 마지막에는 7언시가 쓰여 있다. 동방 5인의 한 사람인 이호민(李好閔)의 아들 이경엄(李景嚴)이 발문을 썼다.
발문과 7언시에 의하면, 이 모임은 역참이 있었던 증약(增若)에서 "정축중동이십이일(丁丑仲冬二十二日)", 즉 1637년 음력 11월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좌목 마지막 부분에 좌목을 쓴 시기를 "기묘칠월일(己卯七月日)"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족자를 완성한 시기는 모임 2년 후인 1639년으로 보고 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좌목에 의하면 정립과 정립의 손자들인 정용(鄭墉), 정증(鄭增), 정직(鄭溭), 이호민의 아들 이경엄, 황정즙(黃廷楫))의 아들 황술(黃述), 강엄(康儼)의 아들 강시위(康時違), 이시립(李時立)의 아들 이운길(李雲吉)이다.
화면의 중앙에 누정을 배치하고 그 안에 일곱 명이 그려져 있다. 누정 위쪽 가운데 앉은 사람이 이 모임의 주인공인 정립이고, 나머지 좌우로 마주 보고 앉은 이들은 자제들이다. 이때 이경엄은 참석하지 못하고 발문만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배경의 원산(遠山)은 모임이 이루어졌던 계절이 겨울 음력 11월이어서 그런지 눈으로 덮여 있다. 누정은 언덕 위에 자리 잡았고 좌우에 소나무 한 그루씩이 그려져 있다. 묘사가 소략하지만 해조묘(蟹爪描)법의 각지게 구부러진 소나무 가지, 설산에 표현된 명암 대비 등 조선 중기에 유행한 절파(浙派) 화풍을 엿볼 수 있어 1639년이라는 제작 시기와 일치한다.
선친들의 동방이 모두 생존한 가운데 열린 계회나 봉수연은 몇몇 사례가 있지만, 한 인물의 장수를 축원하여 동방의 자제들이 축하자리를 만들고 기념물로 족자를 제작한 것은 「역정감구봉수지도」가 유일하다.
보존상태는 좋지 않지만, 그림과 좌목 이외에 이경엄이 쓴 발문이 남아 있어 이 모임이 이루어진 배경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있다. 2019년 6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