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화사 괘불도」는 1924년 동화사에서 조성된 야외의식용 불화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강점기의 괘불도이다. 흰 연꽃가지를 든 독존형의 석가모니불을 장엄신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봉민, 문성 등 19세기 말에 활동한 불화승이 경상북도 지역에서 전해지던 전통적인 도상을 차용해 근대적인 기법과 양식으로 도해한 괘불도이다. 20세기에 조성된 독존형의 장엄신괘불도로 현존 사례가 드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구 동화사에서 조성한 괘불화로, 보관을 쓰고 화려한 영락으로 장엄한 석가모니불이 흰 연꽃 가지를 든 독존상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장엄신 괘불화는 1704년의 영천 수도사 괘불도 등 18~19세기에도 유행한 전형적인 괘불화 도상이다. 주존의 보관에는 두손을 가슴 앞에 모은 7위의 화불을 표현하였다. 경상북도 지역 괘불의 전통을 계승해 적색 법의와 녹색 대의의 문양, 영락 장식, 존상의 안면 표현에서 조선 후기 괘불도의 특징을 인식하고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신체에서 발하는 오색 서기(瑞氣)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나 배경에 도해된 파도문, 옷주름이나 구름 표현의 음영법은 20세기 불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수화승은 대우봉민(大愚奉珉)으로 보응문성(普應文性), 곽운경천(廓雲敬天), 퇴운원일(退雲圓日), 원응천일(圓應天日), 학송학눌(鶴松學訥), 경해진숙(景海鎭淑), 송파정순(松坡淨順) 등 8명이 괘불 제작에 참여하였다.
세로 888.4㎝, 가로 430㎝의 면본 바탕에 그린 대형 괘불도로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사례로 중요하다. 1704년에 조성된 경상북도 영천 수도사 괘불도를 모본으로 한 듯 밑그림과 구성이 유사하다. 꽃을 들고 신체를 장엄한 장엄신괘불은 18~19세기 제작된 괘불의 가장 전형적인 도상 중 하나이다.
화면에 기록된 화기를 통해 경상북도 지역의 근대기 불화승인 봉민, 계룡산화파로 약효를 계승한 문성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활동한 불화승 8명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근대기 화승이 전통 도상을 해석하고 적용한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약 40년간의 활동 기록이 확인되는 대우봉민을 수화승으로 계룡산화파로 금호약효를 계승한 보응문성 등 8명이 제작한 괘불도이다. 조선 후기 괘불의 가장 전형적인 도상 중 하나인 장엄신괘불 도상을 모본으로 삼았다. 오색 서기와 파도문의 표현이나 손이나 옷주름에 사용된 음영법과 바림 등의 채색법은 근대기 불화승의 선택과 해석을 보여준다.
독존형의 석가모니불을 머리에 보관을 쓴 장엄신 형태로 도해한 괘불도로는 20세기 현존 사례가 드문 대표적인 작품이다. 2014년 10월 29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