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곡사 괘불도」는 1938년 근대기의 동양화가 정종여(鄭鍾汝, 1914~1984)에 의해 제작된 괘불화로, ‘석가존상(釋迦尊像)’을 조성한다는 화기가 전한다. 불화의 영역 중에서도 괘불도의 조성은 다수의 시주자가 모연하는 사찰의 큰 불사로, 동양화가가 그린 괘불도의 사례로는 유일하다. 전통적으로 승려 화가에 의해 제작되던 불교회화가 일반 화가에 의해 조성되는 근대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불화 조성에 증명(證明)으로 참여했으며 회주(會主)이자 35명의 시주자를 모연한 불사의 화주(化主)인 제봉동율(濟峰東律)은 이후 서예가로 활동한 청남 오제봉(吳濟峯, 1908~1991)이다. 그와의 관련으로 정종여가 괘불을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모니불은 푸른 천공 위로 구름과 같은 흰 연꽃을 타고 현현하는 모습이다. 여래의 상호와 착의법, 왼손은 아래로 향하고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수인 등 존상의 묘사는 이 시기 불화에서 따르던 일반적인 도상적 규범에서 벗어나 있다. 양식적으로도 불교회화에서 사용된 방식과는 상이한 요소가 많다.
대체로 철선묘(鐵線描)를 사용하는 불화와 달리 비수가 있는 활달한 윤곽선을 사용하였다. 설채법에 있어서도 진채(眞彩) 대신 담채(淡彩)로 채색한 붉은 법의와 흰 대좌, 채색 구름 대신 바림 기법으로 천공을 표현한 푸른 배경은 불화에서는 구사되지 않는 표현 기법이다.
세로 623.5㎝, 가로 333.5㎝의 면본 바탕에 독존 형태의 석가모니불좌상을 도해하였다. 적색의 법의에 투명한 두광과 신광을 갖춘 석가모니불은 종교회화인 불교의 도상이나 양식적 특징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불화는 밑그림이 되는 초(草)를 사용해 바탕천에 윤곽을 올리고 광물성 안료인 석채(石彩)를 기반으로 채색을 올린다. 이에 비해 의곡사 괘불도는 비수가 있는 활달한 필선으로 바로 화면에 밑그림을 그린 후 진채가 아닌 담채 안료로 채색하였다. 존상의 안면과 육신부에는 황색 안료를 음영을 살려 입체감 있게 표현하였다.
종교화에서 존상의 장엄(莊嚴)은 중요한 요소로 법의의 문양이나 배경 등에는 다양한 문양이 베풀어지나 「의곡사 괘불도」는 장식적인 문양은 일체 사용되지 않은 점도 특징이다. 전통적인 불교회화의 필선, 설채가 아닌 일반회화를 그릴 때의 양식으로 공중에 출현하는 석가모니불의 모습을 화가의 창안에 기반하여 개성 있게 표현하였다.
전통적으로 승려 화가에 의해 제작된 불교회화의 영역이 미술가에 의해 제작된 귀한 자료로, 괘불로는 유일한 작품이다. 20세기의 불교 화단은 조선시대의 전통이라는 기반 위에서 다양한 외래 요소가 유입되었고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나타난 신요소가 혼재되어 있었다. 1938년에 동양화가 정종여가 그린 「의곡사 괘불도」는 종교화에 대한 화가의 자유로운 해석과 실험을 보여준다. 당시로서도 이 불사는 이목을 끄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곡사 괘불도」는 근대기 불화에서 그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화로, 최근 월북 작가 정종여에 대한 재조명과 더불어 작가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14년 10월 29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