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영월부 관아는 동헌 영역은 모두 사라지고, 객사 영역의 건물들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영월부 관아의 모습은 1791년(정조 15)에 그려진 『 월중도(越中圖)』에 잘 표현되어 있다. 『월중도』는 영월에 있던 단종의 유적지를 그린 것으로 장릉뿐만 아니라 관아를 포함한 주변 시설을 상세하게 그렸다.
기문에는 "읍치에서 장릉까지는 6리이고, 사직단은 서쪽으로 2리 거리에 있으며, 향교는 동쪽으로 1리, 창절사는 서북으로 2리, 낙화암은 동으로 2리, 사창은 서남으로 1리에 있고 고을의 호수는 123호"라고 하였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며, 1456년(세조 2)에는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이 홍수가 나자 이곳으로 옮겨 거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인 1457년(세조 3)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17세로 승하하였다. 단종이 기거하던 관풍헌은 객사의 동익헌에 해당하며, 단종 승하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가 18세기 말 정조에 의해 중수되었다.
현재 객사 건물은 불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외삼문은 전면의 아스팔트 도로에서 그 위치가 확인되고 있어서 원 위치에 복원하지 못하고 안쪽으로 들여 복원하였다. 중문과 부속건물, 담장 및 백운루는 복원하지 못하였다.
관풍헌 동남쪽 모서리에는 자규루(子規樓)가 있고, 자규루 남쪽으로 외삼문이 별도로 있었으나, 자규루는 최근에 복원하였고 삼문은 복원하지 못하였다. 객사 바로 북쪽에는 동헌 영역인 아사로 표현된 건물군이 『월중도』에는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도시화되면서 근현대 건물들이 있어서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월중도』 중 「관풍헌도」에는 중앙의 정청에 해당되는 부분을 객사라고 기록하였고, 동익헌을 관풍루(觀風樓), 서익헌을 망경헌(望京軒)이라고 기록하였으며 각각 팔작지붕으로 별동 건물처럼 그렸다. 관풍루 앞에는 문루인 백운루(白雲樓)가 있고, 객사와의 사이에는 남북으로 담장이 있어서 별도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객사는 서익헌인 망경헌과 연결되어 있으며 전면으로는 중삼문과 외삼문이 있고, 중삼문과 외삼문 영역은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부속건물이 측면에 표현되어 있다.
관풍헌은 객사 건물의 익헌에 해당되지만 단종이 잠시 기거하였다는 역사적인 의미도 있고 기거를 위해 일반적인 익헌과 다른 평면 구성을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관풍헌도」의 기문에 따르면 "관풍헌은 객관의 동대청으로 5칸이며 전후에 퇴가 있고 분합문이 달려 있으며 중앙에 침방이 있고 대청 동쪽으로는 소루 2칸을 설치했다."고 되어 있다. 최근 발굴을 통해 기록과 같이 복원공사를 진행하였다.
영월부 관아는 조선 후기 중수된 이후 현재까지 그 터와 건축물을 유지하고 있으며, 단종의 역사를 품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3월 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