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實際)는 산스크리트어 koti 혹은 bhūta-koti의 한역어다. 티베트역어는 yang dag pa'i mtha'이다. '실재 · 진실의 영역 · 한계'라는 의미이다.
실제의 뜻에 대해서는 불전마다 조금씩 다르게 설명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진실의 영역’, 즉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한다.
인도 대승 불전인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서는 " 보살은 실제(實際)를 위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행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보살 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실제(實際)의 법(法)을 무너뜨리지 않고 중생을 실제(實際)에 세운다"라고 하였다. 본 경전의 주석서인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도 " 아라한을 일컬어 '실제에 머무는 자'라고 하는데, 이는 법성(法性)을 증득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깨달음을 증득한 지위'가 실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관학파(中觀學派)의 대표적 논서인 『중론(中論)』에서는 " 열반이라는 실제, 그리고 세간제(世間際)라는 두 영역은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라고 설하여 생사와 열반의 평등무차별을 강조한다. 유식학파의 논사(論師)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서는 "진실하므로 ‘실’이라고 하고, 궁극의 경지여서 ‘제’라고 한다"라고 하여 존재하는 것의 궁극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실제는 진여(眞如), 깨달음[菩提]과 동일시된다. 이와 같이 실제는 진여(眞如) · 법성(法性)과 함께 ‘제법의 진실한 모습의 다른 이름’ 등으로 규정된다. 제법의 진실한 모습은 깨달은 자에 의해서 인식되므로 경우에 따라 궁극의 경지를 증득한 자인 여래 또는 아라한을 실제라고 칭하기도 한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실제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으로 동아시아 찬술 경전인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입실제품(入實際品)」을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수행을 통해 진실한 경지인 실제에 깨달아 들어가는 방법을 설하고 있다. 『금강삼매경』을 주석한 원효는 실제에 대해서 "허구를 떠난 구경의 의미"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제의 경지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경전에서 말하는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제시한다. 이는 '원리적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방법'과 '실천을 통해 깨달아 들어가는 방법'을 의미한다. 나아가 ‘제’라는 것은 실제로 ‘제’가 없음을 일컫기 때문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조차 없는 것이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제는 '실천해서 증득해야 할 내용'이라는 실천적 관점에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강삼매경』의 「무상법품(無相法品)」에서는 모든 법의 실제가 ‘결정된 성품’이라는 또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다. 진실한 존재의 경지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효는 이에 대해서 '깨달음을 증득한 항상 고요한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며, 그 모습은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과 같다고 하였다. 실제가 진실한 궁극의 경지인 '존재의 본성'으로 이해된 것이다. 한편, 의상은 '법성을 끝까지 증득한 때'를 실제라고 하였다. 실제의 의미가 '깨달아 들어가야 할 법성 자체'에서 법성을 증득한 사태를 의미하는 '실천적 궁극'이라는 의미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에 대하여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신라 표원(表員)의 『화엄경문의요결문답(華嚴經文義要決問答)』에 나오는 「실제의(實際義)」 부분이다. 여기에서 표원은 지론사(地論師) '름(懍)'의 이론을 전적(前績)으로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실제에 대하여 "'름'은 헛됨과 거짓됨을 묘하게 끊은 것을 ‘실’이라고 하며, 진실한 이치의 근원을 ‘제’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는 머무름이 없는 것[無住]을 본질로 한다"라고 정의하였다. 름은 그동안 논의해 온 실제에 대한 맥락과 다르게 실제와 본제(本際), 선제(先際), 후제(後際)를 비교하면서 실제의 의미를 드러낸다. 진실한 이치가 숨어 있을 때가 본제이고, 드러나 있을 때를 선제와 후제라 하며, 숨어 있거나 드러남은 없지만, 숨어 있다거나 드러나 있다거나 하는 사태와 다르지 않은 것을 실제라고 하여 구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명칭은 각 측면에서 본 실제의 이명이다. 여기서 선제와 후제는 수행의 측면을 말하며, 십신(十信)의 계위가 선제이고,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廻向)이 중제이며, 초지(初地)에서 불지(佛地)까지를 후제로 정의한다. 실제가 이렇게 보살 실천의 내용으로 설명되는 것은 지론종 내에서 실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름은 실제를 생사와 열반의 근원으로 보고, 여래장(如來藏)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상대를 초월한 모든 법의 실상을 실제로 본다.
실제에 대해서는 경론에서와 같이 실제 자체만을 정의하여 이를 진여 · 법성 등과 동일시하는 흐름이 있다. 또한 『금강삼매경』에서처럼 실제를 깨달아 들어가야 할 경지로 이해하고, 그 방법을 설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지론사 름은 생사의 근원으로 여래장이라는 의미와 보살의 계위와 관련시키는 실천적 의미를 더해서 실제를 본제, 선 · 후제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원효(元曉)가 『금강삼매경』을 주석하면서 실제가 선험적으로 결정된 성품이라는 명언에 대해서 진실제와 법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며, 실천의 궁극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의상(義湘)도 실제를 실천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특히 신라 표원은 『화엄경문의요결문답』에서 지론종 름의 실제에 대한 이해를 하나의 장으로 소개하였는데, 이는 지론종 름의 실제에 대한 이해가 신라 불교의 중요한 사상으로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