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관사상 ()

불교
개념
불교에서 논파를 통하여 공, 연기, 무자성, 이제론 등을 강조하는 불교교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중관사상은 불교에서 논파를 통하여 공, 연기, 무자성, 이제론 등을 강조하는 불교교리이다. 중관사상은 ‘연기의 다른 이름이 곧 공’이라고 주장한 용수에서 비롯된 중관학파의 사상을 가리킨다. 용수는 어떤 하나의 개념이 자성을 가질 경우 그 연기성이 파괴된다는 점에서, 선행하는 불법만이 아니고 열반·업·고·여래 등 불교의 근본 개념들을 철저하게 비판했다. 이 무자성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연기·공성·중도라는 ‘같은 뜻을 가진 다른 세 이름’이 중관사상의 핵심이다. 중관사상은 진리를 속제와 진제 둘로 파악함으로써 불교교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정의
불교에서 논파를 통하여 공, 연기, 무자성, 이제론 등을 강조하는 불교교리.
개설

‘중관(中觀)’은 ‘가운데’를 뜻하는 산스끄리뜨어 ‘마디아(madhya)’에 ‘~인 것’ 등을 뜻하는 ‘마까(-maka)’가 첨언된 ‘가운데 것[中]’인 ‘마디아마까(madhyamaka)’와, ‘마디아’에 ‘~에 관련된 것, 사람, 학파, 주장’ 등을 뜻하는 ‘미까(-mika)’가 더해진 ‘마디아미까(mādhyamika)’를 한역한 것이다.

이것은 붓다의 가르침인 상견론(常見論, Śāsvatavādin)과 단견론(斷見論, Ucchedavādin), 즉 상주론과 단멸론이라는 양견(兩見)을 모두 여윈 중도(中道)를 추구한다는 ‘마디아마까’나 그것을 따르는 사람, 학파를 뜻하는 ‘마디아미까’에 ‘자세히 살펴보다’를 뜻하는 ‘관(觀)’이 첨언된 것이다.

티벳어로는 ‘마디아마까’를 ‘우마(dbu ma)’, ‘마디아미까’를 ‘우마빠(dbu ma pa)’라 하고, 영어로는 보통 ‘Mādhyamika, The Middle Way (School)’이라고 부르지만 그 내용은 모두 한역의 중관사상과 같다.

연원 및 변천

‘중(中)’을 뜻하는 ‘마디아마까’나 ‘마디아미까’를 한역 경전권에서 ‘중관’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중관사상의 창시자인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의 대표저작인 『중론(中論, Madhyamaka śāstra)』을 한역한 구마라습(鳩摩羅什, Kumārajīva: 343413)이 『중론』의 총 27품의 소제목으로 반복되어 나오는 ‘~에 대한 관찰, 고찰’을 뜻하는 ‘빠리끄샤(parīkṣā)’를 함께 옮겼기 때문이다.

중관이라는 단어는 삼론종을 뛰어 넘어 한역 경전권의 여러 종파들에게 두루 영향을 끼쳤다. 유식사상을 전면에 내세웠던 법상종(法相宗)에서도 유식삼성(唯識三性)인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그리고 원성실성(圓成實性)의 비실재성와 실재성을 중관을 통해서 설명하기도 했고, 천태종(天台宗)에서도 공관(空觀), 가관(假觀) 등의 이름을 붙였을 정도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중관사상은 ‘연기의 다른 이름이 곧 공’이라고 주장한 용수에서 비롯된 중관학파의 사상을 가리킨다.

내용
  1. 인식론적 발달

1-1. 반야부의 공(空)과 중관사상의 공(空)

중관사상의 창시자인 용수의 대표저작인 『중론』은 반야부의 공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이는 첫째, 최초로 대승을 뜻하는 ‘마하야나(mahayāna)’라는 단어를 쓰며 공사상을 전면에 내세웠던 한역 경전권에서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으로 알려진 『8천반야경(八千般若經, Aṣṭāsa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이 용수의 재세시 이전에 집필, 또는 집경된 시대적 배경, 둘째, 반야부와 용수의 고향이 남인도라는 동일한 지역적 범위, 셋째, ‘더 이상 배울 소승의 가르침이 없어서 용왕이 보장(保藏)하고 있던 반야부 경전들을 배웠다.’는 티벳 전승에 남아 있는 용수에 대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확실하다.

대승경전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사상과 용수가 주창한 중관사상에서의 공사상은 선행하는 부파불교 시대의 붓다의 가르침인 법(法, dharma)에 대한 치밀한 해석, 즉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전자는 ‘(그와 같은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한 반면에 후자는 그 부정의 이유를 논리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반야부 경전으로 오늘날에도 불교 의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반야심경(般若心經, Prajñāpāramitā hṛdaya sūtra)』에서는 불교 인식론의 근간을 이루는 오온(五蘊, pañca skandha) 십팔계(十八界, aṣṭādaśa dhātava) 등을 모두 부정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반면에 『중론』에서는 오온 십팔계뿐만 아니라 ‘열반, 업, 고(苦), 여래’ 등 불교의 근본 개념들마저도 철저하게 논파하고 있다. 용수의 이와 같은 논파는 어떤 하나의 개념이 자성(自性, svabhāva)을 가질 경우, 그 연기성이 파괴된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무자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중관사상을 논할 때면 빠지지 않은 『중론』, 「제24품.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고찰」, [362(24-18)]번 게송에서 ‘연기인 그것/ 바로 그것을 공성(空性)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것에 의지하여[緣] 시설(施設)된 것[=假名]/ 그 자체가 바로 중도(中道)이다’라고 용수가 주장한 것처럼, 연기와 공성, 그리고 중도라는 ‘같은 뜻의 다른 이름’인 이 세 가지는 중관사상의 핵심이다.

1-2. 용수의 논파 방법

용수가 이와 같은 ‘논리를 통해서 논리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언어학적 발전에 따른 영향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반야경들이 ‘잡(雜) 산스끄리뜨어(Hybrid Sanskrit)’로 집필된 데 반해 『중론』 등의 논서들은 고전 산스끄리뜨어(Classical Sanskrit)로 지어져 있다. 이것은 서기전 4세기 경 빠니니(Pāṇini)에 의한 고전 산스끄리뜨어 문법의 완성 이후 정교한 논의를 위한 언어학적 발전이 선행되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중론』, 「제2품. 가고 오는 것[去來]에 대한 고찰」에서는 ‘이미 가버린 자는 가지 않는다. 아직 가지 않는 자도 가지 않는다. 만약 지금 가는 작용 중에 가는 자가 있다면, 가는 자와 가는 작용 중에 가는 자로 가는 자가 둘이 된다.’는 요지의 논파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가는 자(gantṛ)’와 ‘가는 작용(gamana)’이라는 두 개의 다른 단어가 명확하게 정의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얼음이 언다, 비가 내린다’ 등이 동어 반복 문제가 발생하는 문장이라고 부르듯, 약 2천 년 전에 용수는 이런 언어의 한계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했던 것이다.

티벳 중관사상에서는 언급하지도 않지만 한역 경전권의 중관사상에서 강조하는 사구부정(四句否定, Catuṣkoṭi Vinirmukta)의 발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붓다의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불설전유경(佛說箭喩經, Cūlamāluṅkya sūtra)』에 나오는 이 14난(難)은 세계의 시간성(4)과 공간성(4), 여래의 문제(4) 그리고 영혼(2) 등, 총 4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상주론과 단멸론, 즉 양견을 논파할 때 등장하는 이 14난의 4구는 ‘① 존재하는가? [A], ②존재하지 않는가?[~A], ③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가? [both A and ~A], ④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neither ~A nor ~(~A)]’로 약술할 수 있다. 『중론』에 두루 산재해 있으나 특히 「제25품. 열반(涅槃)에 대한 고찰」에서 용수는 이를 전면에 내세워 열반이라는 개념 또한 고정불변의 자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논파하고 있다.

또한 이 「제25품. 열반에 대한 고찰」의 1,2번 게송에는 용수의 대표적인 논파법의 하나인 ‘자띠(jāti) 논법’이 등장한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공(空)하다면/ 생겨나는 것[生]도 존재하지 않고 사라지는 것[滅]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것의 제거[斷]나 소멸[滅]로부터/ (누가) 열반을 바랄 수 있겠는가?’라는 논박자의 주장에 대해서 용수는 동일한 질문으로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공(空)하지 않다면/ 생겨나는 것[生]도 존재하지 않고 사라지는 것[滅]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것의 제거[斷]나/ (누가) 열반을 바랄 수 있겠는가?’

산스끄리뜨어 원 게송에서 공을 뜻하는 ‘순야(śūnya)’ 대신에 ‘공하지 않은 것’을 뜻하는 ‘아순야(aśūnya)’만 바뀐 이 게송에서 보듯, 논박자의 질문을 그대로 돌려주어 논의를 그치게 하는 이 자띠 논법은 원래 업과 윤회를 부정한 인도의 유물론자이자 쾌락주의자인 순세외도(順世外道, Lokāyata 또는 Cārvāka)’의 논파법이었다.

인도 사상사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불리는 순세외도가 논박자의 주장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해 주로 사용했던 이 논파법을 차용했지만 용수는 언어적 표현으로는 붓다의 가르침인 고통에서의 해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 언설 불가능한 문제에 대해서 용수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와 함께 ‘딴 경에서는 다시 「진리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첫째는 세속 진리[世俗諦]요, 둘째는 승의 진리[勝義諦=出世諦]다.’라고 언급하며 ‘병이나 물과 같음은 세속 진리요/ 이와 다른 것은 승의 진리라고 이름하네.’라고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śa śāstra)』에 게송으로 약술되어 있는 이제론(二諦論, dvi satya)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존의 구사론자들이 간과했던 언어의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1-3. 이제론의 전면적 등장

진속이제(眞俗二諦)는 진제(眞諦, paramārtha satya)와 속제(俗諦, loka saṁvṛti satya)로 구성된 ‘두 가지 진리’를 뜻한다. ‘참과 거짓’이라는 둘이 아닌 진리 그 자체가 둘이라는 이 이제론에 대한 강조는 『중론』, 「제24품.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고찰」의 8~10번 게송에 언급되어 있다.

‘부처님들께서 (행하신) 법에 대한 가르침[敎法]은/ 이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세간의 진리[=俗諦]와/ 수승한 의미의 진리[=眞諦]다.’

‘어떤 이들이 그 두 (가지) 진리의/ 구별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바로 그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佛法/ 심오한 (진리)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바로 그 (세간의) 언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진제는 가르쳐질 수 없다./ 바로 그 진제를 알지 못하고서는/ 열반은 얻어지지 않는다.’

이 진속이제 가운데 속제를 뜻하는 ‘로까 삼브르띠 사띠야(loka saṁvṛti satya)’를 해제해보면 ‘세상을 덮고 있는 진리’라는 뜻이다. ‘삼브르띠(saṁvṛti)’는 ‘삼(saṁ)’과 ‘브르(√vṛ)’로 이루어진 것으로, ‘브르’에는 ‘덮다, 감추다’ 등의 뜻과 함께 ‘멈추다, 정지하다’ 등의 뜻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전자에 따라 속제를 해석한다.

진제를 뜻하는 ‘빠라마르타 사띠야(paramārtha satya)’를 해제해보면 ‘최고의 진리’라는 뜻이다. ‘빠라마르타’는 보통 ‘빠라마(parama)’와 ‘아르타(artha)’가 합성되어 ‘최고로 스승한 진리’ 등을 가리킨다.

이 이제론에 대해서 인도 중기 중관파에서는 각각 다른 해석을 하였으며 중국 삼론종(三論宗)에서는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과 같은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곧 ‘세간의 언어를 떠나서 진제가 논의될 수 없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세간의 언어와 그 한계와 마주치게 된 것임을 뜻한다.

  1. 중관 사상의 역사적 변천

용수와 그의 제자 제바에 의해 주창된 중관사상은 인도와 중국, 그리고 티벳이라는 지역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띄며 발전했다. 티벳불교의 각 종파에서는 이 중관사상을 현밀쌍수(顯密雙修)의 전통 속에서 자신만의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한역 경전권의 ‘필터 역할’을 했던 중국에서는 용수의 『중론』과 『십이문론(十二門論, Dvādaśamukha śāstra)』, 그리고 그의 제자인 제바(提婆, Āryadeva: 170~270)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백론(百論, Śataśāstra)』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형성된 삼론종(三論宗)이 중관사상의 발달을 이끌었다.

2-1. 인도에서의 발달

인도에서의 발전은 개략적으로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 Nyāya dvāra tarka śāstra)』 등의 저자 진나(陳那, Dinnāga: 480∼540)의 등장 전후, 즉 구(舊) 인명과 신(新) 인명의 시대 전후를 중심으로 한 중기 중관파에 의한 『중론』에 대한 논리적 해석의 시대, 그리고 유식사상과 결합하는 후기 중관파의 시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이 중기 중관파의 시대를 『중론』 주석자들이 활약했던 시대로 본다. 그리고 용수를 포함하여 불호(佛護, Buddhapālita: 470540), 월칭(月稱, Chandrakīrti: 600650), 데바샤르만(Devaśarman: 56세기), 구나쉬리(Guṇaśri: 56 세기), 덕혜(德慧, Guṇamati: 5세기), 안혜(安慧, Sthiramati: 510-570), 그리고 청변(淸辯, Bhavya 또는 Bhāvaviveka: 500570)을 중관 8대 논사로 꼽는다.

후기 중관파는 7세기 이후의 논사들로 적천(寂天, Śāntideva), 적호(寂護, Śāntarakṣita), 연화계(蓮華戒, Kamalaśīla), 하리바드라(Haribhadra), 쁘라갸까라마띠(Prajñākaramati), 그리고 라뜨나까라샨띠(Ratnākaraśānti) 등을 꼽는데, 이 가운데 적천의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Bodhicaryavatara)』은 오늘날에도 티벳불교를 논할 때면 빼놓을 수 없다.

인도 중관파의 발달사를 논할 때 중기 중관파 논사들 사이에서 오간 인명과의 관계는 항상 언급된다. 구인명 시대의 불호가 『중론』 주석을, 신인명 시대의 청변이 『반야등론(般若燈論, Prajña pradīpa』을 통해서 이 주석에 반론을 제기하고, 그리고 월칭이 『명구론(明句論, Prasannapadā)』에서 불호의 입장을 옹호하고 청변을 비판하였다. 일반적으로 불호와 월칭의 입장을 쁘라상기까(Prāsaṅgika, 귀류/귀결논증?)라고 부르고 청변의 입장을 스와딴뜨리까(Svātantrika, 자립논증)라고 부른다.

스와딴뜨라(Svātantrika)를 해자해보면, ‘스와(sva)’와 ‘딴뜨라(tantra)’가 결합된 것으로, ‘스와’는 ‘자체’ 또는 ‘그 자신’, 그리고 ‘주장하다, 논의하다’ 등의 뜻의 ‘딴(√tan)’에서 파생된 ‘딴드라’는 ‘주장하는 바’, 또는 ‘논의하는 바’에 관련된 정형화된 논의 체계 또는 이론을 뜻한다. 이를 총합해 보면, ‘스와딴뜨라’는 ‘자기 자신에 의존하는 논리를 지닌 학’이 되고 ‘스와딴뜨리까(Svātantrikika)’는 이것의 형용사형이거나 학파나 인물이 된다. 이 점은 오늘날의 자립논증과 일치한다.

그러나 쁘라상가(Prāsaṅga)에서 비롯된 쁘라상기까(Prāsaṅgika)를 해자해 보면, ‘쁘라[pra(ā)]’는 나아간다는 방향성을 지닌 접두사, 그리고 ‘산즈(sañj)’는 ‘연결, 결합하다’는 뜻이 있으므로, ‘쁘라상가’는 ‘상호 연결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논리를 지닌 학’이 되고, ‘쁘라상기까(Prāsaṅgika)’는 이것의 형용사형이거나 학파나 인물이 된다. 한역의 귀류(歸謬)와는 일치해 보이지만 용수의 비판이 논리학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여러 문제가 발견되어 오늘날 영문에서는 그냥 ‘Prāsaṅgika’라고 쓰는 추세다.

산스끄리뜨어 『중론』에 등장하는 ‘쁘라산지에따(prasañjyeta)’는 ‘(~라고 할 경우) 오류에 빠진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티벳어 『중론』에 약 70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와('thad ba)’는 ‘옳다, (논리적으로) 참이다’는 뜻이지만 대부분 부정적으로 ‘(~라고 할 경우) 옳지 않다’는 뜻인 ‘테빨 미귤('thad par mi 'gyur)’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배경 때문에 쁘라상기까를 티벳어로는 ‘텔귤와’라고 부른다. ‘테귤와('thad 'gyur ba)’라고 적고 ‘뗄귤와’로 부르는 것은 ‘테’에 후행하는 ‘ㄱ’음 앞에 연음(軟音) 현상이 발생한 것 때문이다.

중기 중관파를 대표하는 논사인 월칭은 그의 대표 저작인 중론 주석서인 『명구론』, 「제24품.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고찰」, [351(24-7)]번 게송의 주석에서 ‘공성의 목적은 희론(戱論)의 적멸, 공성의 뜻은 진리의 모습, 그리고 공성의 의미는 연기’라고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것은 이후 인도-티벳 중관사상에서 공성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중기 중관파의 중관사상에 대한 논리적 해석은 이후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이라는 대승의 양대 인식론의 결합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육파 철학의 정점을 찍은 불이론(不二論, advaita, non-dualism)을 강조한 베단따 학파의 샹까라(Śāṃkara: 788~820)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인도불교의 사멸로 인해 후기 중관사상 이후의 어떤 발달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2. 중국에서의 발달

한문 경전권에도 중기 중관파 논사들의 『중론』 주석서들이 더러 한역되기도 했으나 구마라습이 청목(靑目, Piṅgala)의 주석서[疏]인 『중론』을 한역한 이후 청목소 『중론』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자체적인 논의를 통해서 발달하였다. 인도나 티벳에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청목에 대한 어떤 확증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으나, 『중론』의 27품을 대승의 25품과 성문, 즉 소승의 2품으로 나눈 그의 주석은 오늘날까지 한역 경전권의 전통으로 굳어져 있다.

중국에서 중관사상의 발전은 주로 삼론종이라는 하나의 종파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구마라습, 승숭(僧嵩), 법도(法度), 승랑(僧朗), 승전(僧詮), 법랑(法朗), 길장(吉藏)을 칠대상승(七代相承)이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구마라습과 승랑, 그리고 길장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대승불교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대지도론(大智度論, Mahāprajñāpāramita śastra)』과 이후 여러 종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논쟁거리가 된 『성실론(成實論, Satyasiddhi śāstra)』 등 74부 380여 권을 한역한 대역경사 구마라습의 영향 아래 삼론종은 고구려의 승려 승랑(6세기?)의 활약 전후로 고삼론(古三論)과 신삼론(新三論)으로 나뉜다.

이것은 『중론』, 『백론』, 『십이문론』에 등장하는 비판주의와 『성실론』에 등장하는 구체적, 분석적, 설명적인 자세를 대승의 입장으로 볼 것인지, 소승의 입장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승랑이 끼친 절대적인 영향 때문이다.

인도의 중기 중관파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이제론의 중국식 형태인 이것은 두 가지 진리, 즉 이제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로, ‘두 가지 진리를 함께 밝혀 중도의 이치를 설명한다.’는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로 약술된다.

『성실론』의 영향 하에 있던 고삼론의 논사들은 이 두 가지 진리를 두 가지 이치 또는 논리[理]로 보는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신삼론의 시대를 연 승랑은 가르침[敎]의 ‘방편’이라는 약교이제설(約敎二諦說)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성실론』의 실재에 대한 구축적, 설명적 입장을 버린 승랑의 이 약교이제설은 이후 중국 삼론종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고 그의 법손자인 길장(549~623)이 『삼론현의(三論玄義)』에서 밝힌 팔불중도관(八不中道觀)과 함께 한역 경전권의 중관사상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교학불교의 후퇴, 폐불(廢佛) 사건, 제례 의식을 중심으로 한 밀교의 대두 및 수행 위주의 선종의 융성으로 인해 삼론종이 종파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자 중국의 중관사상은 더 이상 발달하지 않게 되었다.

2-3. 티벳에서의 발달

인도의 중기 중관파의 활동시기와 거의 동시대적으로 발달한 중국의 중관사상과 달리 티벳 중관사상은 전전기(前傳期, 79세기)에 주요 논서들의 역경 사업이 이루어졌으나 후전기(後傳期, 10세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한역 경전권의 중관사상이 『중론』의 총 27품을 대승의 25품과 성문, 즉 소승의 2품으로 나눠져 있는 청목소에 따르는 반면, 월칭의 『명구론』을 중심으로 발달한 티벳 중관사상은 『중론』을 법무아(法無我, dharma nairātmya, 3-15품), 인무아(人無我, pudgala nairātmya, 16-21품), 즉 2종 무아(dvi nairātmya)로 나누며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2종 무아와 쁘라상기까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티벳 중관사상은 후기 중관파의 적호와 연화계를 경량 중관파(經量 中觀派, Sautrāntika Mādhyamika)와 유가행 중관파(瑜伽行 中觀派, Yogācāra Mādhyamikas) 등으로 세분화하였다.

그러나 마츠모토 시로와 이태승의 연구에 따르자면, 이와 같은 분류는 중관파와 유식파의 결합을 불교 교리사[둡타, grub mtha', 宗義寶鬘]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열하기 위한 인위적인 배치일 뿐, 적호 또한 유가행 중관파라고 한다.

티벳 중관사상은 오늘날 티벳 최대 종파인 게룩빠[dge lugs pa, 黃敎]의 시조(始祖)인 쫑카빠(tsong kha pa: 1357~1419)의 후기 『중론』 주석서인 『지혜의 대해(티벳명 릭빼 갸쵸, rigs pa'i rgya mtsho, 영문명 Ocean of Reasoning)』를 통해서 정형화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티벳불교가 4대 종파의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를 이루며 각자의 독특한 주석을 통해서 발전하는 과정에서 쫑카빠의 실질적인 스승인 렌다와(Rendawa, 또는 red mda’ pa)의 『중론』 주석서 등에서 언급한 ‘설명을 통한 공사상의 상견에 빠질 위험’ 등은 간과되었다.

현황

역사적으로 한국의 중관사상은 고구려 출신 승려인 승랑의 활약과 더불어 백제의 혜현(慧顯)이 삼론을 강설했고 고구려의 혜관(慧灌)이 일본에 삼론종을 전했고 그리고 원효(元曉: 617~686)『광백론촬요(廣百論撮要)』, 『이제장(二諦章)』, 『중변분별론소(中邊分別論疏)』, 『중관론종요(中觀論宗要)』, 그리고 『삼론종요(三論宗要)』등을 지었다는 『속고승전(續高僧傳)』,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교학불교의 후퇴와 선불교의 흥성, 그리고 조선시대 숭유배불(崇儒排佛) 정책에 따라 민간 신앙으로만 잔존하게 된 한국 불교에서 중관사상의 흐름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만 팔불중도나 파사현정(破邪顯正) 등 길장의 『삼론현의』에 나오는 몇몇 개념들을 통해서만 전해져 왔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근래 김성철에 의한 산스끄리뜨어 원문 게송의 『중론(1993)』, 『회쟁론(廻諍論, Vigrahavyāvartanī, 1999)』 등의 역경과 박인성에 의한 까루빠하나(D. J. Kalupahana)의 『중론』 주석서인 『나가르주나(1994)』 등의 번역, 이태승의 『샨타라크쉬타의 중관사상(2012)』 등의 후기 중관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과정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김정근에 의한 월칭의 주석서인 『명구론』, 즉 『쁘라산나빠다(2011)』의 산스끄리뜨어본의 완역으로, 청목소가 아닌 『중론』의 다른 주석서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서구에서 중관사상은 쫑카빠의 『중론』 주석서인 『지혜의 대해』에서 공역자인 가필드(G. L. Garfield)가 정리한 것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용수는 관념론자[an idealist, 무르띠, 1960], 허무주의자[a nihilist, 우드(Wood), 1994], 회의주의자[a skeptic, 가필드, 1995], 실용주의자[a pragmatist, 까루빠하나, 1986], 신비주의자[a mystic, 스트렝, 1967]로 읽혀왔다. 그는 논리 비판론자[a critic of logic, 이나다, 1970], 고전 논리에 대한 방어자[a defender of classical logic, 하이에스(Hayes), 1994] 그리고 초일관 논리학[paraconsistent logic, 가필드와 프리스트(Priest), 2003]의 개척자처럼 간주되었다.’

이것은 크게 초기 비불교도에 의한 중관사상 연구와 불교도에 의한 중관사상 연구로 나눠지는데 서구 철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중관사상을 서구 철학적 구분에 ‘꿰맞추는’ 시기와 중관사상의 고유한 특징을 ‘인정하는’ 시기로도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용수를 관념론자로 정의했던 무르띠는 독일 관념철학, 특히 변증법과의 비교 연구라는 업적을 쌓았으나 그는 불이론 베단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오늘날은 그의 변증법과의 비교 연구뿐만 아니라 가필드의 초일관 논리학이라는 정의까지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한 가지 빼놓을 없는 점은 한역 경전권의 전통은 이나다가 약간이나마 언급하였을 뿐, 아직까지도 승랑의 약교이제설이나 길장의 팔불중도설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의의와 평가

한역 경전권에서 용수를 ‘대승불교의 아버지’나 한역 경전권의 모든 종파들을 통칭하는 ‘8종(宗)’의 조사(祖師)‘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가 주장한 중관사상을 빼놓고는 대승불교를 논할 수 없다. 이것은 반야부 경전에서 시작하여 이후 모든 대승경론들에 널리 퍼진 공사상에 그의 중관사상이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지를 뜻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불교철학의 특징과 서구철학의 비교 연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관사상 연구가 인도-티벳 전통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관계로 한역 경전권의 전통인 청목소의 특징과 팔불중도관 등이 간과되어 있다는 점 등은 중관사상사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서 앞으로 반드시 널리 알려져야 할 부분이다.

이와 맞물려 세계적인 추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월칭소에 따르는 티벳 중관사상에 대한 국내 연구 또한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서 ‘공은 연기의 다른 이름’이라는 용수의 중관사상이 시대와 지역을 떠나 모든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었다는 것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참고문헌

『쁘라산나빠다』(월칭, 김정근 역주, 푸른가람, 2011)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권오민 역주, 동국대학교부설 동국역경원, 2002)
『中論』(용수, 김성철 역, 1993)
『용수의 사유: 산스끄리뜨어·티벳어·한역 『중론』 분석 및 비교연구』(신상환, 서울:b, 2011)
『불타의 세계』(中村元 저, 김지견 역, 김영사, 1984)
「三論學의 二諦說에 대한 재조명」(김성철, 『불교학연구』 제30호, 불교학연구회, 2011)
『佛光大辞典』(佛光大藏經編修委員會 編, 星雲 監修, 台灣: 佛光出版社, 1988)
『Ocean of Reasoning: a great commentary on Nagarjuna's Mula madhyamakakarika』(Tsong kha pa, translated by J. L. Garfield and N. Samten,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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