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보리분법은 초기 불교의 수행법을 총 정리하여 부르는 용어이다.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 삼십칠각지(三十七覺支), 삼십칠보리도법, 삼십칠법, 삼십칠조도품, 삼십칠품이라고도 한다. 삼십칠보리분법은 사념처, 사정단, 사신족,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 팔정도 등 총 7종 37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선불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교학 중심의 삼십칠보리분법에 대한 논의나 연구가 줄어들었다. 1970년대 이후 남방불교 수행법인 ‘위빠사나’을 통해서 사념처관이 알려지면서 삼십칠보리분법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초기 불교의 수행법을 총칭하여 부르는 삼십칠보리분법의 산스끄리뜨어 원명은 ‘삽따뜨림싸뜨 보디빠끄샤 다르마(saptatriṁśat bodhipakṣa dharma)’이지만 한역의 『아함경(阿含經 Āgama)』,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śa śāstra)』, 그리고 대표적인 대승경전인 『유마경(維摩經, Vimalakīrti nirdeaśa sūtra)』에서는 삼십칠도품, 삼십칠조도품, 삼십칠품 등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이것은 ‘37’을 뜻하는 ‘삽따뜨림싸뜨(saptatriṁśat)’가 후행하는 ‘b’음의 ‘삼디(saṃdhi)’의 영향으로 바뀐 ‘삽따뜨림싸드’에 뒤따라 나오는 ‘보디빠끄샤 다르마’를 통일하지 않고 한역한 결과다. ‘보디빠끄샤(bodhipakṣa)’의 ‘보디’에는 ‘깨달음, 각(覺), 보리(菩提), (깨달음의) 길[道]’ 등의 뜻이, 그리고 ‘빠끄샤’에는 ‘나누기, 분(分), 지(支)’ 등의 뜻이 있는데 초기 경론부터 더러 등장하는 이 수행법에 대해서 대승경전인 『유마경』 등에서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옮겼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신역(新譯)의 시대를 연 현장(玄奘: 622664)이 삼십칠보리분법으로 통일적으로 사용하기 전에, 통일된 원칙보다는 자유로운 역경을 선호했던 고역(古譯)의 시기에서 구역(舊譯)의 시대를 연 구마라습(鳩摩羅什, Kumārajīva: 343413)이 『유마경』을 옮기면서 여러 이름으로 약술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십칠보리분법의 내용은 사념처(四念處)[사념주(四念住)], 사정단(四正斷)[사정근(四正勤)], 사신족(四神足)[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칠각분(七覺分)], 팔정도(八正道) 등 총 7종 37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37’이라는 통칭은 가우따마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깨달음을 위한 수행법의 목록을 통칭할 필요성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계차를 이루고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작은 숫자에서 큰 숫자를 배열한 형태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념처를 먼저 닦고 팔정도를 닦는다는 식이 아니라 초기 경론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수행법들을 총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공사상과 육바라밀, 보살사상을 강조하는 대승에서는 이와 같은 구체적인 항목 가운데 사념처와 팔정도 등의 기본 교리 정도만 언급할 뿐 그 세세한 내용을 수행 체계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
‘도(道)를 일컬어 또한 역시 보리분법(菩提分法)이라고도 한다.’라고 부른 한글대장경의 『아비달마구사론』의 「제25 분별현성품(分別賢聖品)」에 자세히 언급된 총 7종의 37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신역에서 ‘사념주(四念住)’라 부르는 사념처는 신(身)·수(受)·심(心)·법(法)의 네 가지로, 사정단은 단(斷)·율의(律儀)·수(修)·수호단(隨護斷)의 네 가지로, 사신족 또는 사여의족(四如意足)은 욕(欲)·정진(精進)·심(心)·사유(思惟)의 네 가지로, 오근은 신(信)·진(進)·염(念)·정근(定)·혜(慧)의 다섯 가지로, 오력은 신(信)·정진(精進)·염(念)·정(定)·혜(慧)의 다섯 가지로, 칠각지 또는 칠각분(七覺分)은 택법(擇法)·정진(精進)·희(喜)·경안(輕安)·사(捨)·정(定)·염(念)의 일곱 가지로, 팔정도는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의 여덟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분법에서 사념처는 관법(觀法, 산스끄리뜨어 vipaśyana, 빠알리어 vipassanā)으로 신념처(身念處)는 몸[身]의 부정을 관(觀)하는 것이고, 수념처(受念處)는 몸을 통해 받아들이는 감수 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기쁨[樂]이 고통[苦]임을 관하는 것이고, 심념처(心念處)는 이와 같은 작용을 하는 마음이 무상한 것임을 관하는 것이고, 법념처(法念處)의 산스끄리띠어는 ‘다르마 스므르띠 우빠스타나(dharma smṛty upasthāna)’로, 즉 모든 현상[法]이 (자성이 없음을) 생각하며[念] 머무는 것[處]인데, 한역에서는 이를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전통에 따라 무아(無我)를 관하는 것으로 옮기고 있다. 이 사념처의 신, 수, 심, 법의 관법을 차례대로 하는 것을 별상념처관(別相念處觀), 총합하여 관하는 것을 총상념처관(總相念處觀)이라고 하며 오늘날에도 이 사념처관은 관법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정단을 다른 말로 사정근·사정승(四正勝)·사의단(四意端)·사의단(四意斷) 등으로 부른다. 악업(惡業)을 끊고[斷] 선업(善業)을 증장하기 위한 올바른[定]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勤]이라는 뜻의 사정근으로 한역한 것처럼, 이미 생겼던 악법을 끊는 것은 단단(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악업을 율의를 통해 지키는 것은 율의단으로 이 둘은 악업에 관련된 것이다. 또 이미 생긴 선업을 지키는 것은 수호단(守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선업을 증장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닦을 수(修)를 쓴 수단(修斷)으로, 이 둘은 선업에 관련된 것이다. 이와 같은 세세한 설명은 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에서도 계속되며 이 가운데 신족은 곧 신통 또는 여의족을 뜻하고, 오근은 인식기관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아닌 신(信)·정진(精進)·염(念)·정(定)·혜(慧)를 뜻하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함경』에 개별적으로, 그리고 『아비달마구사론』에 총체적으로 언급된 이 삼십칠보리분법은 고역(古譯)의 상징인 축불념(竺佛念, 4세기) 등이 역경을 시작한 초기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한역 경전권이 곧 대승불교와 같은 궤를 그리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또한 구마라습이 한역한 재가불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대승경전인 『유마경』 서분(序分)의 「1. 불국품」, 「2. 방편품」, 「3. 제자품」 등에 등장하는 ‘삼십칠조도품’의 경우, 성문(聲聞, śrāvaka), 연각(緣覺 또는 獨覺, pratyeka buddha) 등의 소승의 불제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한때 중국에서는 진제(眞諦, Paramārtha: 499~569)가 한역한 『아비달마구사론』과 유식사상을 토대로 한 섭론종(攝論宗)과 현장이 한역한 여러 유식사상을 근거로 한 법상종(法相宗)을 중심으로 한 교학 중심의 불교가 흥성하기도 했으나 선불교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이 종파들은 자연스럽게 사멸되었기 때문에 삼십칠보리분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같은 경향은 한국 불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세속오계」로 유명한 원광(圓光: 555638)이 중국 유학 시절 섭론종의 교학을 배웠고 신라 중기의 승려인 진표(眞表) 또한 신라에서 법상종을 창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를 율사(律師)로 소개하고 있을 뿐, 삼십칠보리분법과 연관된 특정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주석가로 활약했던 삼국시대의 원효(元曉: 617686)가 진제가 한역한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Madhyānta vibhāga ṭīkā 또는 bāṣya)』의 소(疏)를 지어 삼십칠보리분법을 대승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이에 대한 여러 논의가 오갔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며 수차례에 걸쳐 부침을 거치며 선불교로 수렴, 정착되는 과정을 겪었던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서 삼십칠보리분법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1970년대 이후 소개된 남방 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vipassanā, 觀法)’을 통해서 사념처관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세세한 불교 교학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됨에 따라 이 초기 불교 수행법을 총 정리한 것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