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長興) 묘덕사(妙德寺)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2(卷一,二)는 전조선 전기에 조선 왕실 종친이 중심이 되어 간행한 목판본 불경이다. 『묘법연화경』 권1과 권2 절첩장 2권 2책이다. 이 『묘법연화경』은 후진의 구마라집이 번역한 것으로 『법화경』이라고도 한다. 모두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묘덕사 도서 권1은 서품과 방편품, 권2는 비유품과 신해품의 내용이다. 1456년에서 1460년 사이에 왕실의 대군들이 후원하여 간행된 판본이다. 시기도 조선 전기로서 빠르고 희귀본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후진(後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4)이 한역(漢譯)하였고, 송(宋)의 계환(戒環)이 주해(註解)하였다.
판본은 목판본이며 장정은 절첩장(折帖裝)이다. 2권(권1,2) 2책이며 크기는 세로 32.4㎝, 가로 10.9㎝이다. 상하단변이고, 경계선이 없으며, 체제는 25행 17자로 되어 있다.
각 장의 5∼6행 또는 12∼13행 사이에 ‘권(卷)-팔(八)’로 권차(卷次)와 장차(張次) 표시가 되어 있다. 원래 전엽(全葉) 25행 17자의 절첩형(折帖形) 판식을 선장으로 제본하였던 것을 다시 5행씩 절첩형으로 바꾸었다.
이 판본은 태종의 둘째 아들로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 세종대왕의 아들로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소생인 임영대군(臨瀛大君, 14281469)과 영응대군(永膺大君, 14471467), 세종의 후궁인 신빈(愼嬪) 김씨(金氏)의 소생인 계양군(桂陽君璔, 14271464), 의창군(羲昌君, 14281460), 밀성군(密城君, 14301479), 익현군(翼峴君, 14311463), 영해군(寧海君, 14351477) 등과 세종의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의 남편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 14151462), 역시 세종의 딸 정현옹주(貞顯翁主)의 남편 윤사로(尹師路, 14231463), 임영대군의 아들 오산군(烏山君, 14371490), 세조의 딸 의숙공주(懿淑公主) 남편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 14401504) 등 종친과 세조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오빠인 판서(判書) 윤사균(尹士均: 1458년에 호조참판이 됨.), 광평대군(廣平大君)의 장인 신자수(申自守)와 그의 아들(신윤보, 신윤저, 신윤관, 신윤원, 신윤종), 세조와 동서지간인 승지(承旨) 한계미(韓繼美) 등 왕실의 친인척들이 시주하여 간행한 것이다.
간기는 없지만, 정현조가 1455년(세조 1)에 하성위에 봉해졌고, 1468년(세조 14)에는 하성군(河城君)이 되었다. 그리고 한계미가 1456년(세조 2)에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1460년(세조 6)에 호조참판(戶曹參判)이 되었다. 그러므로 1456년에서 1460년 사이에 이루어진 판본으로 보고 있다.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法華經)』이라 한다. 삼승(三乘)이 결국 일불승(一佛乘)으로 귀일한다는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 대표적인 대승 경전이다. 불교전문강원의 수의과(隨意科) 과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법화경』은 모두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묘덕사 소장본 권1은 서품과 방편품, 권2는 비유품과 신해품의 내용이다. 방편품에서 내가 육도 중생을 바라보니 모두 빈궁하고 복덕과 지혜가 모자라 생사의 험한 길에 들어가 계속해서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오욕에 깊이 빠져 탐욕을 사랑해 스스로 지혜를 덮고 눈이 멀어서 소견이 없다. 이들을 구제하려고 대비심을 일으켜 성문, 연각, 보살의 3승을 방편으로 삼아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한 것이다.
비유품에서는 장자가 불타는 집에 있는 자식들을 장난감을 이용한 3가지 수레로 무사히 빠져나오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비유하였다. 그리고 신해품은 50년 동안 못 만났던 장자와 가난한 아들 이야기이다. 이 역시 방편으로 믿게 하여 결국 아들을 찾았고 재산을 물려주었다는 내용이다. 장자는 부처님이시고 아들은 중생이다.
장흥 묘덕사 도서 『묘법연화경』은 조선 왕실의 종친이 중심이 되어 새긴 판본으로 왕실의 불교신앙 형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경전이다. 간행할 때 참여한 연판공(鉛版工)이나 교정, 각수(刻手) 등과 판 보존을 위해 칠을 입히는 칠장(漆匠)과 경판 제작시에 참여한 공양주(供養主)로 보이는 이름들과 참여한 직책과 숫자 등이 나열되어 있다.
이 판본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판본으로 인쇄 상태도 매우 양호하여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2016년 7월 7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