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 호서(湖西)의 노론(老論) 학자 신유(申愈, 1673~1706)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서양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천문 지리 학설에 영향을 받아 만든 천지(天地)의 모양에 관한 학설이다. 신유는 이를 직접 글로 남기지 않았으나, 추종자 · 비판자들의 글을 통해, 땅이 정육면체 모양[六面方正之物]이며 그 6면 모두에 사람 사는 세계가 있다고 주장한 학설임을 알 수 있다. 이 학설은 땅의 구체적인 모양보다는 우리 세계의 상하 관념을 땅의 옆면이나 아랫면의 세계에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무상하(無上下)’ 명제를 핵심 주장으로 삼았다. 땅의 반대쪽 상하가 뒤집어진 대척지(對蹠地)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강조해서 ‘지하세계설(地下世界說)’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신유는 송시열(宋時烈)의 적전(嫡傳)을 이었다고 하는 서인(西人) 학자 권상하(權尙夏)의 제자로서, 1705년(숙종 31) 시기에 이 학설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학설은 신유의 사후 ‘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로도 불리던 권상하의 문인들 사이로 확산되었다. 한홍조(韓弘祚), 현상벽(玄尙璧) 등이 대표적인 지지자들로서, 그에 비판적인 이간(李柬), 한원진(韓元震) 등의 문인들과 18세기 전반기에 걸쳐 산발적인 논란이 벌어졌다.
신유와 육면세계설(六面世界說)의 추종자들은 서양 과학에 영향을 받은 자신의 학설이 실은 고대 중국의 복희씨(伏羲氏)로부터 주돈이(周敦頤), 주희(朱熹)에 이르는 중국 성현들의 가르침과 부합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 점에서 육면세계설을 둘러싼 논란은 권상하의 문인들 사이에서 “주자(朱子) 정론(定論)”이 무엇인지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의 연장선에 있었다. 사람과 동물의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주희의 모순되는 언급을 둘러싸고 이들 사이에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변이 시작되었듯, 천지의 모양에 대한 주희의 서로 다른 언급이 육면세계설 논란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비판자들은 “땅이 물 위에 떠 있다.”라는 『주자어류(朱子語類)』의 구절을 들어 그 학설이 주희의 견해와 어긋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지지자들은 『주자어류』의 구절은 주희 문인들의 잘못된 기록이며 그의 진정한 견해는 “허공 중의 땅덩이를 대기(大氣)가 받치고 있다.”라는 『초사집주(楚辭集注)』 구절에 담겨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은 18세기 전반 호서 노론 학계에 한정된 사건이었지만, 조선 후기에 중국을 통해 유입된 서양 과학이 보수적인 성리학자들의 학풍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