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자동차는 한국에서 외국산 모델 자동차 시대의 대표격인 기업으로서 일본 도요타 모델 승용차를 조립 시판하여 시장을 선도하였으나 1970년대 고유 모델 승용차 개발에 실패하여 부실화한 자동차 회사이다. 1966년부터 도요타의 코로나승용차 부품을 수입 조립하여 승용차 시장을 장악했으나, 그에 안주하여 1970년대 정부의 고유 모델 승용차 개발 정책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부실화하였다가 대우그룹에 인수되어 대우자동차㈜로 새출발하였다.
김창원은 1965년 11월 부평 새나라자동차 공장을 인수하여 신진자동차로 개명하고, 1966년 1월 도요타자동차와 기술 및 자재 도입 계약을 맺었다. 신진은 첫해인 1966년 코로나승용차 3,117대를 생산하였고 해마다 생산을 늘려서 1969년에는 19,494대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새나라자동차와 같은 SKD방식이어서 1966년 국산화율은 21%에 불과했고,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더뎠다. 처음엔 고작해야 타이어, 배터리, 기타 부품 정도만 국산화하였다. 엔진, 트랜스미션, 프로펠러 샤프트, 조향 장치, 브레이크 등 핵심 부품은 모두 수입하였다.
한국 정부는 1969년 말에 자동차 및 주요 부품의 국산화 정책을 세웠다. 국산화 실적에 따라 1971년 신진, 현대, 아세아에 각기 1만대, 5천대, 5천대의 생산허가를 주었다. 정부는 국산화 실적이 높을수록 더 많은 생산 허가를 내주었으므로, 자동차 3사는 국산화를 위한 투자를 해야 했다. 그러나 도요타가 합작계약을 파기하였고, 정부는 수출 산업화를 염두에 두고 고유 모델 승용차 개발을 요구하였다. 신진은 미국 GM사와 1972년 50:50으로 합작하여 GM코리아로 변신했다. 그러나 GM은 한국에서 고유 모델 승용차 개발에 관심이 없었고 결국 GMK는 부실화하여 산업은행 관리에 들어갔다. 산업은행이 1978년 자신의 지분을 대우그룹에 넘겼다.
신진자동차는 한국 자동차공업 발전 단계에서 외국산 모델 승용차 시대를 선도한 기업으로서 자동차공업 발전사의 주1을 담당하였으나, 고유 모델 승용차 개발에 실패한 후 부실화하여 대우자동차㈜를 거쳐 한국GM으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