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충남 보령에서 출생하여 공주고, 서울대 법대를 마친 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1956년에 재무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61년에 1년간 IMF에서 연수하였으며, 1964년 재무부 이재과장, 1966년 이재국장, 1968년 세정차관보를 거쳐 1968년 농림부 농정차관보가 되었으며, 1970년 청와대 외자관리비서관, 1972년 상공부 차관과 재무부 차관, 1973년 대통령 경제 특보, 경제1수석을 거친 후 1974년 9월~1978년 12월 재무부 장관을 하였다. 1988년 이후 충남 보령에서 내리 국회의원 4선을 하였다. 2017년 사거하였다.
재무 관료로서 박정희 집권기 경제개발에 투자 재원을 마련하며 경제 위기를 수습하는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중엽 재무부 이재과장, 이재국장으로서 재정안정계획을 담당하여 인플레이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경제개발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1965년 금리현실화조치의 실무자로서 사금융을 은행 공금융으로 끌어들였으며, 1967년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재원에 관한 계획을 세웠고, 농림부 근무 때는 농림수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강화하였다. 부실 기업 문제가 심각해진 1972년 사채(私債)를 동결하고 금리를 대폭 낮추며 다양한 자금 공급책을 제공한 8·3조치로 기업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금융 시스템을 안정화하였다.
1973년에는 대통령 경제 특보로서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 단장을 맡아 중화학공업육성계획을 수립하고, 국민투자기금을 설치하여 중화학공업화의 소요 내자를 마련하였으며, 선정된 전략 업종에 대하여 산업 기지를 건설토록 하였다. 1974년에는 국제 유가가 4배나 오른 충격에 대응하여 저소득층의 부담 경감과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긴급 조치를 내놓았으며, 1975년에는 중산층의 재산 형성과 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하여 기업 공개를 추진하였고, 1977년 과세 대상 확대와 세제 간소화, 안정적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하였다.
재무 관료로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전 에세이로서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매일경제신문사, 2002)를 내고 2006년에 그 개정판으로서 『개발년대와 IMF위기시의 재정 금융정책 비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