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에 근대 회사 제도가 소개된 후 이를 본뜬 회사가 1880년대 초부터 설립되었다. 1883년과 1884년 각기 18개, 13개의 회사가 설립되었는데, 조선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다수의 관영 공장이 설립되자 객주, 시전 상인 등 민영 상회사가 활발히 세워졌다. 그후 회사 설립은 연 5개로 주춤하였으나 갑오개혁 후인 1895년부터 다시 증가하였고 특히 대한제국 설립 후인 1899~1902년 사이에 급증하였다. 이는 전보다 막강한 힘을 갖게 된 황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 전매권이나 징세청부권을 가진 주6 회사의 설립을 남발하였기 때문이다. 이 회사 중에서는 상업을 목적으로 한 상회사가 많았다.
개항기 상회사에는 한 지역에서 특정 물종의 전매권을 얻은 회사로서 누룩 회사, 주1 회사, 어상(漁商) 회사, 주2 회사 등이 있었으나, 실제로 독점적 상업을 영위하기보다는 그 물종을 취급하는 다른 상인에게 세금을 받는 수세(收稅) 회사인 경우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특정 지역 간의 무역을 독점한 주3 회사도 실제로 운송 무역을 직접 영위하기보다는 다른 선상에게 세금을 징수하고 운송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개항 직후에는 시전 상인이나 선상 등의 상인층이 회사 설립을 주도하였으나, 대한제국기에는 관료가 회사 관계 인물의 40%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이 특권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라기보다는 비공식적으로 묵인된 경우가 많았고 농상공부나 내장원, 궁내부 등 특권 공여 기관도 서로 경쟁적으로 특권을 부여하느라 특권의 안정적인 실행을 보장하지도 못하였다. 이로 인해 특권 공여 기관도, 특권을 획득한 상회사도 자본 축적이 곤란하였다.
개항기의 상회사는 대체로 유통에 대한 독점권을 기반으로 군소 상인들을 수탈하는 역할을 했으며, 서양 근대 이행기의 국책 회사와 달리 이를 허가한 중상주의 정책에 체계성이 없었기 때문에 상업 자본의 축적이나 국가 재정 수입 증대에 기여하지 못하였다. 이 상회사들은 한국 내정을 장악한 일본 주5에 의해 해체 · 정리되었으며, 실제 사업을 하는 근대 회사의 탄생은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