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운로(車雲路)
내직으로는 내자시정, 사옹원정, 공조정랑, 시강원필선, 외직으로는 개성부교수, 어천도찰방, 풍기·금성의 군수, 황간현감, 금성부사, 봉상시판관, 첨정 등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개성부교수 당시에는 홍이상(洪履祥, 유수), 이시정(李時禎, 경력), 윤영실(尹英實) 등과 장원 합격자들의 모임인 사장원계(四壯元契)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는 당대 사람들로부터 비록 문벌(門閥)은 미천하였으나, 형 천로(天輅)와 함께 문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중경지(中京誌)』에 의하면, 아버지 식과 천로·운로 삼부자(三父子)는 세인(世人)들이 소식(蘇軾) 삼부자에 비견할 만큼 시문(詩文)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문집인 『창주집(滄洲集)』을 남겼다. 묘소는 경기도 장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