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
또 혁신의회는 민족유일당재만책진회를 자매 단체로 조직하여 통합 운동을 추진하였다. 반면, 1929년 4월 협의회의 중심 세력인 정의부는 참의부의 일부 세력과 신민부의 민정파와 합쳐 국민부를 조직하고, 정의부·참의부·신민부를 해체하였다. 결국, 1920년대 후반기의 민족유일당운동은 재만유일당책진회와 국민부, 두 단체로의 통합까지는 이루었으나, 끝내 이들 두 단체를 하나로 통합시키지는 못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전체를 통괄하는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기된 것으로서, 당시 독립운동에 있어 최대 과제였다. 그러나 지방색과 파벌, 방법론적인 대립, 사상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여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좌·우단체가 통합을 모색하였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의는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