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홍(李圭弘)
1917년 10월 일본 경찰의 급습을 받아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오도산성(五道山城)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 끝에 탈출, 1918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와 접촉, 김규식(金奎植)의 독립청원서 제출을 위한 파리 여비로 1,300원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에 협력하다가, 1920년 3월 항일운동의 무대를 만주로 옮겨 김좌진(金佐鎭)에게 군관학교 운영자금으로 3,000원을 헌납하였다. 그 해 6월 독립운동의 자금 조달을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보부상으로 가장, 활약하였다. 1924년 2월 8일 서울에서 일본 경찰에 잡혀 4개월 동안 고문을 받은 뒤 보석으로 출감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