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융(姜融)
할아버지가 진주의 관노였으며, 누이동생은 송악사(松岳祠)의 무당이었다. 충선왕이 즉위 7개월 만에 왕위에서 물러나 원나라에 들어가 있는 동안, 충렬왕과 충선왕을 둘러싼 정치적 모략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는데, 그 당시 충선왕의 측근이었다. 그때의 공이 인정되어 충선왕이 다시 왕위에 오르자 내부령(內府令)으로 발탁되었다. 충숙왕대에 역시 승진을 거듭하여 만호를 거쳐 1328년(충숙왕 15) 찬성사가 되고, 1335년(충숙왕 복위 4)에는 첨의좌정승판삼사사(僉議左政丞判三司事)에 이르렀다. 충숙왕에 의하여 단성협대공신(端誠協戴功臣)의 호를 받았고, 또 뒤에 진녕부원군(晉寧府院君)에 봉해졌다. 이같은 출세의 배경에는 딸이 원나라의 승상 탈탈(脫脫)의 애첩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데, 이점은 강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