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백 김응하 장군 묘비(遼東伯 金應河 將軍 墓碑)
이에 명(明)에서는 ‘요동백(遼東伯)’으로 추증하였으며, 조선에서도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시호를 충무(忠武)라고 하였다. 1665년(현종 6) 철원에 사당이 건립되었고, 1668년(현종 9)에 ‘포충사(褒忠祠)’로 사액(賜額)되었다. 포충사는 6·25 때 묘비(廟碑)를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1974년에 묘비를 3군영내(三軍營內)로 이전했다가, 1984년 다시 현재 위치로 옮겼다. 비의 총 높이는 3.89m이며, 비신은 오석(烏石)으로 크기는 96㎝×215㎝×32㎝이다. 비문은 전 · 후면에 모두 새겨져 있으며,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박태유(朴泰維)가 글씨를 썼으며,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전서로 제액(題額)을 썼다.